하우스 맥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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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맥주 만들기
  • 맹다혜<곰이네농장 대표·주민기자>
  • 승인 2014.12.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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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하우스 안에 새롭게 마련한 내 휴식공간에서 수제 맥주를 만들었다. 1년여 전에 한번 만들어봤을 때 같이 만들던 아는 언니와 다음엔 우리 하우스서 만들어보자고 약속했었는데 이제야 실행을 한 것이다. 하우스 안을 좀 그럴듯하게 꾸며놓고 아는 분들 불러서 재미있게 놀고 싶은 마음이었고 수제 맥주는 하나의 놀거리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맥주를 만드는데는 보통 4~5시간이 걸리는데, 그 긴 시간동안 이야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맥주도 마셔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조 교육을 해주신 선생님도 댁에서 만들다보면 온 집안에 수증기가 차서 골치 아픈데 시골에선 만들 수 있는 장소가 많다며 좋다고 하셨다.

특히나 술을 즐기는 나에게는 농장체험거리로 딱 맞는 일인 것 같다. 그동안 농사를 지으면서도 왜 농촌체험을 안하느냐, 소비자와의 교류도 중요한 것이라며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너무 바빴었고, 그 체험거리라는 것이 정작 나한테는 재미가 없는 것들이라서 영 내키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애지중지 키워놓은 작물들을 막 아무렇게나 해놓을 것 같은 거부감이 일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농장에서 직접 해본 수제 맥주 만들기는 나도 재미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더 여유 있게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우스 군데군데 심어놓은 허브에 대한 설명도 해드리고, 직접 애플민트를 따서 모히또(칵테일)도 만들어드리니 너무 좋아하셨다.

하우스에서 허브농사를 일부 짓는다고 하니 와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벌써부터 그분들과 함께 만든 수제맥주가 저온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일 생각을 하니 흐뭇하다. 여하튼 농촌체험, 소비자와 함께 하는 활동들이 중요한건 나도 알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또하나의 스트레스가 된다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더군다나 1인당 얼마인데, 그것을 농장에서 충분히 뽑고 가겠다는 식의 생각으로 오시는 분들에게 농장을 개방한다는 것, 농적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거나,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나누는 게 아니라 그냥 천박한 소비자로써 오는 분들을 내가 왜 맞춰줘야 하냐는 자존심인 것이다. 며칠 전 누가 나에게 농사는 갑자기 왜 시작했었느냐고 물었었다.

미쳤었나보다고 했고, 사실은 밭고랑에서 풀 뽑다가 힘들어서 잠깐 누워있었는데, 그때의 편안함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뒤로 이어진 과정은 농촌이 살려면 그런 수준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고 이일 저일 부추겨져 떠밀려온 일들과 내 무모함이 합해져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들이었다. 밭고랑에서 누워있던 때처럼 편안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아주 가끔, 잠깐 잠깐 이었던 것 같다.

남들에겐 비웃음의 대상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러고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나에 대한 존중,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시간, 농촌에서만 할 수 있으니 우리 집에서 노는 게 좋겠다며 모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농촌체험 활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하우스에다 양조장을 만들고 맥주를 계속 만들겠다는 결론은 좀 웃기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냥, 마냥 즐거운 시간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괜히 이러다 보리농사도 짓겠다는 난감한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나 좋은 데로, 내가 재밌는 데로 농사를 계속 지어볼 생각이다. 모든 일들이 다 그렇지만 그래야 또 답이 보이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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