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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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회
  • 윤해경 <행복중심 풀무생협 상무이사>
  • 승인 2015.03.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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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첫 만남에서 참 많은 것을 궁금해 한다. ‘나이는? 직업은? 어디서 살고? 결혼은? 아이는? 얼마나 버나?’ 또한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곤혹스럽고 당황스럽기까지 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한다. ‘성적은? 대학은? 취직은? 결혼은 언제 할래?’ 흔히 이런 것을 개인영역의 침해로 여겨 불편해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개인적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할까? 먼저 우리사회에서 개인의 영역이라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부터 살펴보자.

분명 위의 질문들은 개인적 영역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열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할 때는 자신의 판단으로 나의 영역의 일부를 열고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열고자 하였을 때이다. 이외의 개인적 영역이라 치부되는 것은 부모의 공양, 자녀양육, 개인이 병이 났을 때 등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책임지고 해결해야하는 개인의 영역이 삶의 대부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공적인 영역은 무엇일까? 여기서 잠시 나도 당혹스럽다. 공적인 것. 공공성. 사회전반에 걸쳐 우리가 공유하고 지켜야 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공중도덕은 유치원에서 배운 것만 지켜도 참으로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라고! 그 말은 우리가 사회에서 지켜야하는 공공성은 유치원만 다녀도 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를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우리 사회의 정의는 무엇일까? 사회 구성원 대부분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행하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는 세월호 사건을 모두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공분하였다. 하지만 채 일년이 가기도 전에 우리는 그 날의 모든 일을 망각하고 잊고 싶어 한다. 그리고 유가족에게 그만하라고 종용하며 마치 가족을 담보로 자신의 영달을 챙기려한다는 식으로 공격까지 서슴치 않는다. 정의와 공공성은 개인, 특정집단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많은 미디어와 여론에 속아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개인의 영역으로 강요되는 부모공양에 대한 부분은 노인복지라는 공적영역으로 해결하려 할 때 이기적인 것인가?

자녀양육에서 유치원 보육료지원과 급식지원금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가? 이 논리로 보면 사회적 공공영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인복지는 일평생 사회와 가정을 위해 노력한 자에 대한 사회적 보답이며, 자녀들에 대한 보육료, 초중고 급식은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의 투자이다.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동안 개인의 삶은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영역에 포함되어져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논리가 복지는 개인이 감당해야할 영역이지 사회나 국가가 책임져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포퓰리즘을 다수의 정치인들이 주장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일본식 장기침체로 가지 않기 위해서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부양해야할 노인층은 많아지는데 그 부담을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88만원세대에게 지울수 있을까? 바로 지금 우리가 개인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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