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6>
광천 출신 문인화가 강은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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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6>
광천 출신 문인화가 강은이 화백
  • 장윤수·김현선 기자
  • 승인 2015.06.2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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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 출신 문인화가 강은이 화백

“유복자이셨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기억이 있을 무렵부터 할아버지께 정성껏 제사를 지내셨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먹을 갈아 직접 지방을 쓰셨죠. 옆에서 먹을 갈아드리기도 했는데 뭔가 아무 이유 없이 그 묵향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문인화가 강은이 화백의 말이다. 광천 출신의 설석헌(雪石軒) 강은이 화백은 현재 충남 천안에서 서화실을 운영하며 30년 가까이 문인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강 화백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먹을 갈아 지방을 쓰시고, 남은 먹으로 서예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또 강 화백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께서는 청양이 고향으로 몸이 아파 낙향하신 유생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면서 “외할아버지께서 딸내미 집에 오시면 외손녀들을 무릎 가에 둘러 앉혀놓으시고 공자 왈 맹자 왈 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저희 형제는 모두 6남매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는 재래식으로 어리굴젓을 제조해 판매하셨는데, 형제들이 줄줄이 학교에 다닐 때는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웠죠. 때문에 큰 오빠만 대학교에 보내고 장녀인 저는 고등학교까지만 겨우 다닐 수 있었습니다.”

2남 4녀 중 둘째로 장녀였던 강 화백은, 광동초에 입학해 분교였던 광신초를 거쳐 지금은 사라진 광남초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물화를 그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화병에는 꽃 세 송이가 꽂혀 있었는데, 저는 한 송이는 화병 안에, 한 송이는 화병에 걸쳐 있게, 마지막으로 나머지 한 송이는 화병 아래로 늘어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그림을 보시고, ‘참 잘 그렸다’며 칭찬을 해 주셨고 벽에 걸어 전시도 해주셨습니다.” 강 화백은 “당시엔 부끄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칭찬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천여중을 거쳐 광천상고에 들어갔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소설 주니어’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잡지에 기고를 해보기도 하고, 남몰래 노트나 일기장에 작품을 써서 책상 안에 두고 자물쇠로 잠가 감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것 같아요.”

강 화백은 이처럼 문인의 꿈을 꾸며 대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나머지, 어머니 몰래 한 지방 대학교의 국문학과에 지원해 입학을 했다. 그러나 누구의 도움 없이 대학을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고, 한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강 화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콧잔등이 시큰해서 눈물을 흘렸는데 어머니는 대학에 못 가서 우는 거냐며 마음 아파하셨다”며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니 몰래 대학에 갔다는 말은 감히 꺼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어머니께서 광천은 돈이 많고, 주먹이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 사회활동을 엄격히 제한하셨다”며 “친척집에 하숙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남편을 데려와 집에서 선을 보게 했고 스물넷이라는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결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 말씀, 아버지 묵향맡으며 자란 어린시절 추억
천안서 서화실 운영하며 30년간 문인화의 전통 잇고 있어
지난 2005년 초등·고등 동문들의 도움으로 고향서 개인전
먹 갈며 수신하고 인격 도야하며 마음 치유할 수 있을 것

강 화백은 이후 연년생인 형제를 낳았고, 큰 아이가 3살이 되던 1988년, 서예를 시작했다. 그런데 주변의 한 지인이 “붓 한 자루만 더 사면 된다”면서 그림도 같이 배우자고 해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강 화백에 따르면, 그가 찾아간 스승은 ‘계정 민이식’ 선생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3대 문인화가 중 한 사람이다.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는 것에 한스러움이 항상 있어서인지, 최고의 선생님들께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컸죠. 그래서 없는 형편에 남들처럼 밥 사먹고, 차 마시고 하는 여유도 못 부려가며 문인화 공부에만 매진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투자할 돈까지 레슨비로 쓰면서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닌지 괴리감이 들기도 했다”는 강 화백은, 우리나라 현존 5대 작가라는 취묵헌 인영선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다.

“문인화는 예로부터 왕궁의 사대부들이 사서삼경 같은 경전을 읽다가 여가로 그렸던 그림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의 문인화(文人畵)가 된 것이죠.” 강 화백은 “한국화와 같은 타 장르처럼 덧칠을 하지 않고, 단숨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내는 일필휘지(一筆揮之)가 특징”이라면서 “자세한 묘사는 하지 못하지만, 그림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야 하는 것이 문인화”라고 밝혔다.

 

선명하니 고운매화 135cmx60cm 화선지 수묵담채 2013년.

강 화백은 지난 1994년 한 동네 학교에서 수업의뢰를 받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5년 국전에 처음으로 입상했으며, 1999년까지 5년간 수업을 하던 강 화백은 개인 서실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등록생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 화백에 따르면, 최근 천안에는 화실이 5곳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강 화백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문인화는 서실에서 제대로 배워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마지막까지 운영을 하려 한다”고 밝혔다. 서실이 잘 운영되던 때 강 화백은 개인전을 많이 열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강 화백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항상 보여주고 싶다”면서 “서실 운영 등의 어려움으로 갈등과 고통이 따르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 화백은 이밖에도 국전 특선 및 입선, 예술의 전당 청년작가 선발 등 각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서예부문, 문인화부문 초대작가로 활동하며 공모대전 운영·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또 강 화백은 지난 2005년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문들의 요청으로 고향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금도 그 따뜻한 마음씨를 잊을 수 없다”는 강 화백은, “원래 코엑스에서 전시를 하기로 하고, 모든 작품을 준비해뒀던 상태였는데 동문들이 직접 작품을 사 주기도 하며 비용을 마련해줘 고향에서 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에서만 전시회를 열고 마쳤지만, 고등학교 동문들이 “왜 여기서는 열지 않느냐”고 연락을 하는 통에 강 작가는 전시회를 연이어 열게 됐다. “그냥, 부모형제가 부르는 것처럼 기꺼이 오게 되더라고요. 고향은 그렇게 항상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살고 계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습니다.” 강 화백은 문인화가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서예나 문인화를 하려고 하는 관심이 있다면 그것이 곧 50%의 재능입니다. 나머지 50%는 인내심입니다. 꾸준히 오래 오래 하는 것 말이죠. 그 두 가지가 문인화를 할 수 있는 100%의 재능입니다.”

마지막으로 강 화백은 문인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최근에는 사회가 참 복잡하고, 무엇이든 결과를 빨리 구하고자 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일은 쉽지 않죠. 그렇기에 틈틈이 먹을 갈아 심신을 안정시키는 문인화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문인화가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그러나 시끄러운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어줍니다. 미처 갈고닦지 못한 모난 구석을 먹을 갈며 수신하고, 인격 도야를 통해 빠른 변화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겁니다.”
 


설석헌(雪石軒) 강은이(姜銀伊) 화백은…     
아호는 설석헌(雪石軒), 설은(雪垠)으로 개인전 및 초대전 8회와 다수의 그룹전을 가진 바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초대작가, 예술의전당 한국서예청년작가, 한국미술협회 문인화분과위원, 도솔, 소치, 서해, 면암서화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1999년부터 지금까지 충남 천안에서 ‘설은묵연서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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