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은 홍주성 안에 있어야 한다
상태바
군청은 홍주성 안에 있어야 한다
  • 손규성<언론인·칼럼위원>
  • 승인 2015.12.03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세기 미학자로 미술사를 ‘예술의지’를 가진 ‘정신사’로 바라봐 유명한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였던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 1858~1905)은 현대 유적 또는 기념물들의 가치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오래된 가치’ ‘역사적 가치’와 ‘현재적 가치’가 그것이다. 건축구조물을 철거, 수선 또는 이전 등을 하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적어도 이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홍성군이 홍주성 안에 있는 홍성군청 이전여부와 이전할 경우 이전후보지 선정조건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홍성군이 청사 이전여부 논의를 공식화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가장 큰 이유가 ‘낡고 비좁아’ 옮긴다면 주민들과 정말로 많은 논의와 협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군청은 공무원들의 집무장소만을 상징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협소하고 노후한 이유로 이전 또는 신축한다면 그 시급성을 따져봐야 하고, 그 다음에 청사신축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우선돼야 한다. 당연히 주민 복지를 위한 예산배정에서 왜곡되지 않는다는 전제라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됐다면 청사신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논의의 출발점은 알로이스 리글의 세 가지 가치기준을 근거로 내세운다면 주민들의 합리적 동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재의 청사가 낡고 비좁은 것을 떠나, 오래됐거나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물이냐의 문제이다. 청사 자체만 보면 본질적으로 콘크리트 건물이고 화재 이후인 1970년 전후에 지어져 큰 가치를 주기에는 마땅치 않다는 판단이다. 현재적 가치도 구조물로만 보면 건축학적 의미를 부여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재정적 부담문제가 해결된다면 현 청사를 부수고 새로 짓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짓는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알로이스 리글적 관점으로 볼 때, 고려할 가치가 한 가지 더 있다. ‘집단기억으로서의 가치’를 판단기준으로 삼자는 말이다. ‘홍성군청’은 행정구역상으로 현재의 홍성이라는 지리적 공간만을 행정적으로 대표하는 자치기구가 아니다. 수백 년 전부터 목사나 관찰사의 집무장소이며, 아주 오랫동안 그 권한과 권위를 행사하는 역할을 해왔다. 행정, 사법, 입법, 감사 등의 통치행위를 해온 공간으로, 단순한 사무공간과는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홍성의, 홍성군청을 홍주목사의 이런 통치권한이 집중된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홍성 주민뿐 아니라 목사의 권위가 미치는 주변 시·군까지 이런 집단기억이 남아있다. 특정 구조물과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집단적으로 유지하고 회상한다는 것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 환경과 습속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로 연결되는 세대 간의 사고의 단절을 막고 융합을 유지, 촉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고 항상 그곳에 가면 있다’는 집단기억 안의 건축물은 그 도시와 그 지역의 영혼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홍주성과 그 안의 홍성군청은 특별한 ‘장소성(場所性)’을 갖는다. 장소성이야말로 홍성의 역사이자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이며 이것들은 바로 홍성에서 사는 사람들의 집단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집단기억은 우리가 다시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문화적 가치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수선하거나 이전하는 모든 행위 이전에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군청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면, 대대로 이어온 우리들의 집단기억을 소멸시키거나 세대 간에 기억을 단절시키는 행위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것은 홍성이라는 지역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신사적인 가치의 문제가 아닌 도시계획적 측면의 군청 청사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려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