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판소리, 동·서편제 융합 독특한 판소리문화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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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판소리, 동·서편제 융합 독특한 판소리문화 창조
  • 글=전상진 전문기자/사진·자료=한기원 기자
  • 승인 2016.10.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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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지역 중고제와 한성준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5>

 ■ 글 싣는 순서
 1. 홍주(홍성·결성)지역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1 (서천)
 3.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2 (서산)
 4. 판소리 중고제의 맥, 보존과 전승 3 (공주)

 5.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1 (전북 전주·익산·고창)
 6. 판소리 동편제·서편제의 맥, 보존과 전승 현황 2 (전남 구례·보성)
 7. 판소리 소리제(대가닥) 기록 자료를 찾아서 (서울, 경기도 양평)
 8. 전문가에게 듣는다 (중고제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가능성)



 

▲ 권삼득 명창비.

전북 전주·익산·고창, 전통문화 창조 통한 독특한 판소리 창조
전주 판소리, 동·서편제 융합된 ‘동초제’ 판소리 대부분 차지
익산 판소리, 근대 5명창인 정정렬제 ‘춘향가’ 계승 위한 노력
고창 판소리, 판소리 이론 정립한 신재효 못자리, 대명창 활약


 

■전북 전주·익산·고창… 덜렁제, 동초제, 정정렬제, 석화제 등 다양한 판소리 나와
충청·경기지방을 중심으로 고제와 중고제(中古制) 판소리가 성행했다면, 전라북도는 신제(新制)인 동편제(東便制)와 서편제(西便制) 판소리가 뒤섞여 나타난다. 그 가운데 전북의 대표적인 판소리문화권인 전주를 비롯해 인근 익산과 고창의 판소리도 동·서편제 판소리의 뒤섞임이 심하다. 여기에 중고제까지 섞이니 독특한 판소리 문화가 탄생했다. 전주는 조선 숙종(또는 철종·고종) 때 무예와 연희를 겨룬 경연대회 성격의 ‘전주대사습놀이’가 생기나면서, 판소리를 비롯한 각종 전통연희, 전통무예 등이 전주, 더 나아가 전라북도의 전통문화를 형성한 단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주는 전국의 소리꾼들이 전주대사습놀이를 계기로 모여들었고, 상호 간의 교류 속에 ‘동·서편제의 혼재’라는 독특한 판소리 문화를 만들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전주 판소리… 전주대사습놀이 전통 이어 판소리 큰 맥 형성
전주의 판소리는 ‘전주대사습놀이’에서 판소리 경연대회가 핵심이 되면서 장자백, 정창업, 김세종, 송만갑, 염덕준, 이날치, 박만순, 주덕기, 장수철 등 명창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고,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겨룸’이 전주의 판소리 문화를 형성했다. 전주의 판소리는 권삼득 명창을 처음으로 언급해야 한다.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양반 출신의 비가비 광대로, 이른바 전기 8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의 출생지는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이다. 그는 안동 권씨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글 배우기를 싫어하고 소리 공부에만 전념하다 결국 파문됐다고 한다.

그는 기록으로 전하는 최초의 명창인 하한담과 최선달의 후배이다. 그들에게 소리를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중고제 판소리 염계달 명창이 권삼득의 창법을 많이 본받았다고 한다. 그는 권마성(勸馬聲, 귀인의 행차에 교군들이 가마를 메고 가며 높은 소리로 길게 부르는 소리)을 응용한 판소리 선율인 ‘덜렁제’를 만들어 후대에 전했다. 도약 선법을 사용하는 덜렁제는 매우 씩씩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며, 현재까지도 여러 소리 대목에 구사된다. 동리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그의 성음을 비유한 바 있다. ‘흥보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그 중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그의 더늠이다.

 

▲ 전주 동초제 정립한 김연수 명창.

■전주 판소리… 동·서편제 혼재 속 동초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 자리매김
권삼득 명창으로부터 비롯한 전주의 판소리 꽃을 활짝 피운 명창은 다름 아닌 김연수 명창이다.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1907~1974)는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태어나 29세라는 늦은 나이에 판소리에 입문해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웠다. 또 그는 근대 5명창인 송만갑(동편제)으로부터 ‘흥보가’와 ‘심청가’를 학습했다. 이후 근대 5명인 정정렬(서편제) 문하에서 ‘적벽가’와 ‘춘향가’를 익혔다. 그는 타고난 성음이 탁하고 성량도 부족했으나, 독공과 수련으로 이를 극복했다. 평소 사설을 중시했던 만큼 발음이 정확한 편이며, 너름새가 정교하고 붙임새가 다양하다. ‘춘향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동초제(東超制)’를 정립했다.

이와 같은 그의 노력은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그의 ‘춘향가’는 비교적 신제에 해당하는 정정렬 바디를 토대로 하되, 새로운 소리를 짜 넣고 옛 명창들의 더늠을 다시 살린 창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산 저산 꽃이 피니’로 시작하는 단가 ‘사철가’를 짓기도 했다. 특히 그는 ‘구전심수(口傳心授,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아드리다)’전승된 판소리 사설에 오자(誤字)와 와전이 많다는 사실에 평소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오류를 교정한 창본을 만들고자 틈틈이 그 내용을 정리했다. 정확한 장단과 주석을 붙인 창본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흥보가’, ‘수궁가’ 등이 197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출판되기도 하는 등 판소리 사설 정리에 큰 업적을 남겼다.

 

▲ 전주 동초제 정립한 오정숙 명창.

■전주 판소리… 오정숙·이일주 명창, 동초제 전주 넘어 전북지역 확산하는데 큰 공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를 전주지역에 확산한 공은 제자인 오정숙 명창의 몫이다. 오정숙(吳貞淑, 1935~2008)은 경남 진주시에서 태어난 여성 명창으로, 판소리와 시조, 꽹과리에 능했던 오삼룡의 딸이다.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로 이주했다. 14세 때 동초 김연수가 창극단 공연을 위해 전주에 왔고, 그녀는 김연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우게 됐다. 23세에 상경해 김소희로부터 ‘심청가’ 일부를 익혔고, 33세부터 김연수의 전수생으로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다섯 바탕을 모두 학습했다. 주로 전주 일대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이일주, 조소녀, 민소완, 은희진 등이 그녀의 제자이다. 그는 서울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에서 소리를 지도했으며, 말년에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동초각을 짓고 후진을 양성했다.

그녀는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그녀가 부른 ‘춘향가’는 김연수에서 이어지는 바디이다. 가사 전달이 정확하고 아니리와 너름새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그의 극적인 너름새와 재담 구사는 청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녀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한 최초의 여성 명창이자, 동초제 판소리의 충실한 계승자로 평가된다. 전북도립국악원 서경숙 학예연구사는 “전주지역을 비롯해 전북 일대가 동초제 판소리가 80~90%를 차지할 만큼 동초 김연수 명창과 그의 제자인 오정숙 명창, 이일주 명창의 공이 크다”며 “이를 통해 전주지역의 판소리는 동·서편제의 혼재 속에 탄생한 김연수 명창의 ‘동초제’라는 새로운 판소리가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정정렬 명창.

■익산 판소리… 국창 정정렬의 정정렬제 ‘춘향가’ 전통 맥 이어 후배 명창 활약
익산의 판소리는 전기 8명창 중 한 사람이자 가야금 병창제인 ‘석화제’를 창시한 신만엽 명창으로부터 유공렬 명창을 거쳐, 서편제 판소리 정정렬 명창으로 귀결된다. 정정렬(丁貞烈, 1876~1938)은 전북 익산군 망성면(현재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서 태어난 근대 5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김초향, 김여란, 김연수, 박록주, 이기권, 조진영, 조상선, 박동진, 김소희, 강도근, 한승호, 최난수, 최승희 등이 그의 제자이다. ‘조선창극사’ ‘정정렬’ 조에서는 그를 서편제 명창으로 분류했다. 목이 탁하고 성량이 부족한 떡목을 타고났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수련해 대명창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강건한 상청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중하성이 넉넉하고 수리성을 지녔기에 소리의 질감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춘향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그 중 ‘신연맞이 대목’이 그의 대표적인 더늠이다. ‘이별가’, ‘십장가’, ‘옥중가’도 그가 새롭게 짠 대목이라 한다. ‘심청가’와 ‘적벽가’도 잘 불렀으며, 그가 작곡한 ‘숙영낭자전’은 박록주-박송희를 통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정정렬제’, ‘춘향가’의 정립이라 할 수 있다. 정정렬은 익산 지역에 전승되던 집안 소리인 중고제 ‘춘향가’에 김세종 바디의 새로운 소리를 수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춘향가’를 짰다. 이로부터 “정정렬 나고 춘향가 다시 났다”라는 말이 있게 됐다. 김여란-최승희를 통해 전해진 그의 ‘춘향가’는 여타의 ‘춘향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면서 현대 ‘춘향가’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밖에 익산에는 여성 명창 박초월 명창의 조카이자 가수 조관우의 아버지인 조통달 명창, 임화영 명창, 거문고 신쾌동 명인 등이 정정렬제 판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임화영 명창은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안에 판소리전수관을 건립하고, “익산은 국창 정정렬 명창, 거문고 신쾌동 명인 등 많은 국악인을 배출한 지역”이라며 “선배들의 명성을 이을 훌륭한 후배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창 판소리… 판소리 이론가 동리 신재효 못자리, 판소리 획기적 업적 남겨
고창의 판소리는 판소리 사설을 여섯 마당으로 정리한 신재효 선생의 태어난 곳이다.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고창 지역에서 활동했던 중인 출신의 판소리 이론가이자 비평가, 판소리 여섯 바탕 사설의 집성자, 판소리 창자들의 교육 및 예술 활동을 지원한 후원자이다. 신재효는 판소리 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판소리사에 영향을 미친 그의 공로로 첫째, 판소리 후원자 및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들 수 있다. 그는 판소리 명창 김세종을 자신의 집에 소리선생으로 기거하도록 해, 판소리 교육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동편제에 속했던 박만순·김세종·전해종·김창록 등과 서편제에 속했던 이날치·김수영·정창업 등을 이론적으로 지도했다. 또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 명창이라 할 수 있는 진채선·허금파 등도 그의 후원 하에 배출되었다.

둘째, 신재효는 판소리 이론가 및 평론가로서의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단가 ‘광대가’를 통해 판소리의 이론적인 측면을 밝히는 한편, 판소리 창자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의 4대 법례를 제시했다. ‘광대가’에는 그 외에도 당대 창자들의 소리에 대한 미학적 평가, 그리고 시김새, 조, 장단론, 연기론 등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이해가 담겨 있다. 셋째, 판소리 여섯 바탕 사설의 개작자 또는 집성자로서의 업적이 있다. 그는 만년에 판소리 열두 마당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타령’의 여섯 마당을 개작했다. 이는 판소리의 공연예술적 성격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기반으로 창자의 성별, 나이, 가창 능력에 따라 판을 분화시킬 수 있는 사설을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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