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송림,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유기방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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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송림,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유기방 고택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0.1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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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재발견-선비정신과 공간의 미학,

문화관광자원화 방안의 지혜를 읽다<8>
▲ 서산시 인산면 여미리마을의 유기방고택 안채 전경. 들어열개문이 열려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400년전 정종대왕 넷째아들 후손 집터 유기방가 4대째 살아
안채와 사랑채 진입부 완전분리 사생활 존중에 의미 둔 공간
일제강점기 한옥 지역적·시대적 특징으로 문화·학술적 가치
고택 주변 수선화 군락지, 300년 비자나무 유명 관광객 몰려


 

서산시 운산면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서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여미리마을의 유기방 고택이 그곳이다. 소나무가 많은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유기방 가옥으로 불리는 이 고택은 1900년대 초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과 건물 지붕 사이에 세워진 독특한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ㅡ자’로 길게 늘어선 안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채에서 작은 문으로 연결되는 사랑채에서는 한옥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기를 끌었던 방송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김혜수 분)과 장규직(오지호 분)이 자염을 구하러 갔다가 아이를 받은 집으로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 서산시 인산면 여미리마을의 유기방고택 안채 전경.

■1919년 건립 일제시기 전통가옥형태 간직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72-10에 있는 유기방 고택은 운산면 소재지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약 2㎞ 정도 가다 보면 도로의 북쪽으로 여미리마을이 있다. 여미리마을의 북서쪽으로는 ‘큰말’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유기방 고택은 큰말의 가장 안쪽에서 산을 등지고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는데, 1919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 전통가옥의 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건립되어 있는 대문채는 지난 1988년 중문 채를 헐어 내고 전통 가옥 형태의 누각형 대문채로 신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체 4770㎡ 면적의 북고남저(北高南低) 지형에 건물을 앉히고 후면에 급한 경사지를 따라 길게 타원형 토담을 둘렀다. 가옥 좌측에 지붕이 개량된 가랍집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으로 장독대와 낮은 와편 담장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一자’형 안채와, 동편에 담을 사이에 두고 ‘ㄴ자’형의 사랑채, 그 앞에 ‘ㄱ자’형 사랑 대문채가 자리 잡고 있다. 안마당 서측에는 동향으로 작은 행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으며, 누각형 대문은 좌우 행랑채 처마가 맞닿는 부분에 올려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튼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대문채는 누각형 대문채이다. ‘ㄴ자’형 팔작지붕의 대문채는 외벌대 기단 위에 낮은 방추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네벌대의 석축 기단과 안마당이 나온다. 대문채와 안채의 단 차를 두어 건물의 위계를 보여 주며, 외부인의 시야를 어느 정도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채는 두벌대 기단을 쌓고 방형 초석 위에 사각기둥을 세웠으나 좌우로 갈수록 장대석(長臺石) 기단을 놓았다. ‘ㅡ자’형 평면에 팔작지붕이며, 가구 구조는 1고주 5량이다. 주상부는 납도리 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2칸 통간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부엌,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면에는 장독대가 있는데 장독 자리마다 박석(薄石)을 놓았다. 대청은 들어열개문을 설치하여 필요시 완전한 개폐가 가능하게 하였다. 부엌은 2칸 통간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으며 좌측으로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안방 배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툇마루 좌측에는 골방, 우측에는 다락이 설치되어 있다. 건넌방에는 전면에 난방을 위한 아궁이와 누다락을 설치하였다.

안채 좌측에는 동향을 하고 있는 작은 행랑채가 배치되어 있다. 외벌대 기단에 낮은 방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사용하였다. ‘ㅡ자’형 평면의 우진각 지붕을 한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으며 담과 이어져 있다. 행랑채 중앙에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협문(夾門)과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에는 화장실, 우측에는 온돌방이 있다. 온돌방 앞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안마당 동편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중문(中門)이 설치되어 있다. 중문간(中門間) 담장은 콘크리트로 수축되었다. 중문을 지나면 자갈이 깔린 사랑 마당과 사랑 대문채 서측면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채는 사랑 대문채와 마주하며, ‘ㄴ자’ 평면의 팔작지붕이다. 두벌대의 기단 위에 방추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웠다. 정면 2칸 통간의 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었으며, 전면과 우측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전퇴집이다.

대청에는 정면과 측면에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고, 방과 대청 사이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설치하여 필요시 사랑방과 대청을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 사랑채 좌측면에 난방을 위한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배면에는 시멘트 기단으로 마감을 하였으며 사랑방 앞으로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사랑채 굴뚝은 석조형 굴뚝에 질항아리를 올렸는데 굴뚝개자리 형태가 특이하다. 사랑채와 마주하여 ‘ㄱ자’형의 사랑 대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랑채와 사랑 대문채로 둘러져 ‘ㅁ자’형을 이루면서 배치되었다. 사랑 대문채는 외벌대 자연석 기단을 쌓고 방형 초석 위에 사각기둥을 세웠다. 3량가 팔작지붕이며, 가옥 바깥 면 전체적으로 화방벽을 설치하였다. 문간과 창고, 아궁이,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돌방 전면에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으며, 방문 앞에 놓인 높은 디딤돌이 인상적이다. 고택의 안마당은 누각형 대문채를 통해 진입할 수 있고, 사랑 마당은 사랑 대문채를 통해 진입이 가능하다. 안마당에서 사랑 마당으로의 진입은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있는 중문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각 내실에 접하기 위해서는 동선을 한 번 더 거쳐야만 가능하게 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의 진입부가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사생활 존중에 의미를 두고 공간을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 특이한 모습의 유기방고택 대문채(사진 왼쪽)와 유기방 고택의 주변에 핀 수선화.

■수선화군락지·300년 비자나무 관광객 발길
현재 서산시 운산면 유기방 고택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유기방이다. 지난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민속 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유기방의 아들인 유완호·김미선 부부가 거주하고 있으며, 주변의 유상묵 가옥(충청남도 민속 문화재 제22호), 유기정 가옥과 일가이다. 이 세 가옥들은 특히 담장과 가옥 배치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서산시에서는 서산의 문화재를 둘러보는 ‘아라메길’이라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제1코스의 첫 번째 답사지가 유기방 고택이다. 유기방 고택은 일제강점기 한옥으로서 지역적 특징과 시대적 특징으로 인하여 문화적·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누각형 대문간 채와 그 좌우에 있는 행랑채는 근래에 다시 수축한 것으로 원형을 상실하고 있으며, 인근에 지붕 모양이 바뀌었지만 배치와 평면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가랍집 등이 현존하고 있다.

고택 주인인 유기방 씨에 따르면 “이 고택은 400여 년 전 정종대왕의 넷째 아들의 후손이 살던 집터인데 100여 년 전 제 조부께서 고택을 새로 짓고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4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여미리마을의 유기방 고택에는 해마다 3월이면 노란색 수선화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려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고택 주변 1600㎡ 규모의 정원에 만개한 수선화는 100여 년 된 고택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이곳의 수선화는 보통 3월말에서 4월 초에 만개하는데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 1주일 정도 일찍 꽃이 핀다고 한다. 이곳 고택 주변의 수선화 군락지는 그냥 언덕에 피어난 것보다 ‘유기방 고택’이라는 고택 뒷동산에 피어나 마치 고택을 더욱 값지게 하는 효과가 돋보인다고 한다. 100여 년 전부터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유기방(70)씨가 15년 전에 수선화 묘목을 옮겨심기 시작해서 오늘과 같은 큰 군락지를 이루었다고 하니 그동안 들인 정성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만하다.

한편 고택의 뒷동산에 올라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충청남도기념물 제174호로 유명한 ‘여미리 비자나무’가 있다. 수령 340여년의 이 비자나무는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퍼지고, 수피는 회색빛을 띄는 갈색이며, 오래된 나무줄기가 얕게 갈라져 있다고 한다. 이 비자나무 잎은 길이 25㎜, 나비 3㎜ 정도로 단단하며 끝이 뾰족하고, 우상(羽狀)으로 2줄로 배열한다. 잎 표면은 짙은 녹색이며, 뒷면은 갈색이다. 잎자루는 길이 3㎜ 정도로 6~7년 만에 떨어진다고 한다. ‘운산 여미리 비자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이 마을의 재지사족인 예민이씨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비자나무는 입향조 이창주의 증손인 이택(1651~1719)이 1675년 현직에 있을 때 제주도의 비자나무를 흙과 같이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예민이씨 가문의 역사와 더불어 궤를 같이 하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나무라는 설명에 의미와 가치가 더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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