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세월 3대가 지켜온 장흥의 문화사랑방 ‘문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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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세월 3대가 지켜온 장흥의 문화사랑방 ‘문화당’
  • 글=한관우/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1.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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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책방의 희망과 전략

공동체문화예술 소통공간을 꿈꾸다<12>
▲ 전남 장흥 문화당은 70여년 세월동안 오롯이 지역문화의 풀뿌리인 책방을 이어오고 있다.

전남 장흥의 문화당서점은 장흥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문화당이라는 상호는 2016년 현재 처음 서점을 열 때(1945년)부터 변함없이 71년째 이어지고 있다. 장흥 문화당서점의 창업주인 고 최인창 옹은 일제의 암흑시기 소학교를 마치고 목포에서 고숙이 살고 있던 이곳 장흥으로 열다섯 나이에 찾아왔다고 한다. 열다섯 소년의 고숙은 재봉틀 사업을 하고 있었고, 소년은 고숙집에서 재봉틀을 판매하고 수리하는 기술을 배우면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고 한다. 언제나 소년의 손에는 책이 들려져 있었고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는 것. 그의 끝없는 독서 열풍을 말리지 못한 고모와 고숙은 그의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작은 서점을 하나 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한다. 장년이 된 그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참으로 즐거웠고, 서점 이름도 고숙의 권유로 자신이 생각해 냈다고 한다. 스무 살 청년은 문화사업에 기여한다는 생각에서 문화의 집, 즉 ‘문화당’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전남 장흥의 문화당서점이 70여 년 전 탄생한 연유다.
 

■단골손님 모아 문화사랑방으로 거듭날 터
장흥읍 중심지의 상가들이 대부분 이름도 바뀌고 주인도 많이 바뀌었지만 문화당은 장흥에서 가장 오래된 상호로 남아 있는 동네책방이다. 동네의 서점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데 70여년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는 물론 농·어촌지역 동네책방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동네책방이 동네에 하나만 남아있어도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장흥의 인구도 옛날과 비교하면 3분의 1 정도인 4만 여명에 이른다. 초창기 서점을 운영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처음 서점을 열었을 당시에는 장흥군 전체 학교의 교과서를 문화당에서 모두 공급했다고 한다. 당시 장흥엔 초등학생만 해도 3만 명 정도나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장흥군 전체 10대 인구수가 3700여명에 이르고 있다.

2016년 현재, 장흥군의 교육현실은 유치원 16개교에 330여명, 초등학교 15개교에 1500여명, 중학교는 9개교에 10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4개교에 1000여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농촌지역인 장흥의 교육현실이라는 설명이다. 장흥군 전체 학생이 28개 초중고 학생 39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처럼 4000명도 채 안 되는 현실에서 교과서도 서점에서 납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교과서에서 직접 납품한다는 것이다. 지역 서점시장은 빈사 상태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지역 서점의 멸종이 임박했다’는 비관론에 맞서 ‘단골손님을 모으는 문화사랑방으로 거듭나겠다’는 낙관론에 군불을 때는 시골 농촌지역인 장흥의 문화사랑방 ‘문화당서점’의 생존 전략은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것에 답이 있다는 설명이다.
 

▲ 문화당에서는 이달의 책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장흥 문화당 서점 창업주인 최인창 옹은 생전에 그의 곁에는 언제나 할머니 김연옥 여사가 그와 함께 서점을 지켜왔다. 일제의 암흑기를 딛고 광복을 맞이했으며 6·25한국전쟁 시기에도 꿋꿋하게 지역의 서점 ‘문화당’을 지켜왔던 창업자 내외는 7~8년 전 모두 세상을 떴다고 전한다. 지금은 큰아들인 최경석 대표 내외가 문화당을 지키고 있다. “과거 장흥의 3만 여명의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납품했던 당시엔 마진이 1%였다고 하는데 그래도 권수가 많아 나름대로 돈이 됐지만 아버님은 젊었을 때부터 돈을 많이 벌 수 없는 책방과 인연을 맺었고, 또 돈 버는 재주가 없어 돈을 모으지 못했다”며, “언제나 우리들 7남매 자식 낳아 잘 기르고 가르친 게 남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아버님은 처음 서점 문을 열 때부터 문화사업을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학생들이 좀더 많은 책을 읽도록 권장하기 위해 각 학교에 학급문고를 설치해주고 책도 무상으로 많이 내 주시며 교육현장에 헌신하셨다”는 설명이다. 이렇듯 장흥의 문화당에서는 지역문화 활성화에 앞장서 노력했다고 설명하며, 과거 전성기시절에는 잘 팔렸던 잡지로는 ‘사상계’를 시작으로 월간 ‘학원’과 ‘어깨동무’순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월간지가 나올 때쯤이면 학생들이 줄을 서서 책을 기다렸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어진 시대라고 동네책방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아쉬워했다.

▲ 70여년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문화당 풍경.


■동네책방이 살아야 동네문화 유지 발전돼
최인창 창업주가 젊었을 때에는 서울 종로의 육일서점과 광주의 삼복서점 등에 직접 찾아가 책을 도매로 가져와 팔았다고 한다. 6·25한국전쟁이 일어났던 6월 25일도 책을 사오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전쟁을 만났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틀간 고생한 끝에 마지막 열차를 타고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의 와중에 책이 많이 없어졌고, 전쟁이 끝나고도 책을 미처 정리하지 못해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 종로의 육일서점도 광주의 삼복서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 열악한 경영환경에서 시장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지역거점 동네책방들의 경쟁력 제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시점이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에 대처하지 못한 한계를 솔직하게 반성함으로써 빼앗긴 책 시장을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한 인구가 없는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 농촌의 동네책방을 살리는 일에 농촌의 실정에 맞고 지역의 현실에 맞게 장점을 극대화시켜 자생력을 스스로 찾아내고 키워야 할 상황이다. 우리가 동네책방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동네책방은 지역의 경제활성화는 물론 문화적 거점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들 한다. 동네책방이 살아야 동네의 문화가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흥 문화당의 최인창 창업주가 처음 서점을 시작했을 때에는 작은 서점에 손님들이 가득 했다지만 요즈음은 손님이 많지 않은 것이 시골 동네책방의 풍경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책은 언제나 사보는 사람만 사본다는 것이 진리라면 진리일 뿐이다. 지역문화의 풀뿌리인 70여년 역사의 장흥 문화당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발표하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과 ‘청소년 권장도서’의 전시코너를 시범운영하는 전국의 지역서점 1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독서와 도서 판매가 연계되는 선순환 방안 마련에 기여하기 위한 프로젝트여서 동네책방의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러한 노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열악해 지는 동네책방의 현실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크다.

그렇다면 과연 동네책방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동네책방이 지역경제와 지역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지방자치단체장은 과연 있을까. 자치단체장이 살고 있는 동네책방 자리에 술집이 들어섰다면, 그 단체장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동네책방을 살려야 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동네책방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실행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나 결과로 나타나기에는 부족한 현실이다. 따라서 동네책방은 ‘출판물 전시장’으로 도서를 독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면서 ‘문화공간’의 기능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이런 역할과 기능을 도외시 한다면 상업적 이윤추구라는 목적 앞에 윤리와 도덕은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것은 문화상품이자 공공재이며, 지식상품이다. 따라서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사회적 공감이 절실한 이유다. 책은 시장의 논리에 지배받는 일반 상품과는 다른 것이며, 수익의 논리에 좌우될 수 없는 문화재산이기 때문이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돌아들어 목욕탕과 이발소, 피아노학원을 지나면 오래된 벽돌 건물에 다소곳이 들어앉은 동네책방. 녹슨 철문이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고, 한가운데 작은 석유난로가 따스하게 손님을 맞았던 과거의 동네책방. 대여섯 명만 들어가도 서로 움직이기 곤란할 만큼 비좁은 공간이어도 그곳에는 꿈이 있었고 희망이 가득했던 곳이 시골, 특히 농촌지역의 동네책방이었다. 동네책방을 하려는 사람들이 책방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동네책방 사업이다.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이 책을 다른 공산품과 똑같이 다루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도 한 것이 바로 동네책방이라는 사실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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