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사랑방 진주문고, 지역콘텐츠를 책으로 만든다
상태바
주민들 사랑방 진주문고, 지역콘텐츠를 책으로 만든다
  • 글=한관우/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6.12.01 0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 동네책방의 희망과 전략

공동체문화예술 소통공간을 꿈꾸다<13>
▲ 진주문고의 추천도서 코너인 내마음의 책방은 진주문고 직원들이 시대정신과 삶, 앎의 가치를 충족시키는 책들을 엄선하고 있다.

동네책방, 지역출판사를 설립해 새로운 콘텐츠로 모험에 나서
지역의 문인들과 네트워크 형성, 행사 등 시민들과 소통 나서
지역주민들과 한마음 한뜻, 토종서점의 문화의식 새삼 부러워
지역주민들 만남의 공간 역할, 지역에 관한 책 테마별로 배열

 

경상남도 진주에 자리 잡고 오랜 세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 진주문고는 대형 프렌차이즈 서점들의 지방 진출로 인해 다 사라져가는 지방 서점 중 드물게 살아남아 새로운 방식으로 지방 서점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역 작가나 출판사 등에는 무조건 우대한다는 소신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민들의 글은 지역서점으로서의 값어치를 만들어가고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서점이라고 전한다. 지역주민들에게 그 지역의 인물과 출판사를 중심으로 강연을 열고 책을 소개하며 주민들과 소통의 장을 여는 서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지역과 동네서점들이 지향해야 할 좋은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지역 주민들과 한 몸이 된 토종서점과 그 서점을 지켜내는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진주문고의 외부모습.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들과 소통
지난해 진주문고는 새로운 콘텐츠로 모험에 나섰다. 지역출판사 ‘펄북스’ 설립이 그것이다. 진주문고는 지난 1986년 경상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개척서림’으로 출발했다.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주로 다루는 1인 서점으로 출발해 다른 도시의 토종서점들이 겪어온 온갖 부침의 역사를 똑같이 경험했다. 한때는 부도로 문을 닫을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러한 위기에 오히려 매장을 확장하고 확대하면서 일찍부터 철저한 정가제를 시작한 뚝심은 오늘의 진주문고를 있게 한 힘이 됐다. 책만 파는 서점의 역할에 작가와의 만남, 인문특강 등 독자들을 위한 문화행사와 지역밀착형 서점을 추구하면서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거리의 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더한 것은 기본이었다. 그 덕분에 1988년에는 150㎡ 규모로 확장해 대여점과 세미나 공간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 ‘책마을’로 개편했다.

당시는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했던 대학생들이 막 사회로 첫발을 내딛던 시기였기에, 이를 바탕삼아 유료회원제를 운영하면서 대여를 겸했다. 사회과학서적이 일반의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진주시민 4만 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지금은 7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인구 5명 중 1명꼴로 등록한 셈이다. 지역사회는 물론 서울에서까지 주목을 받았지만 이 실험은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험이 좌초한 원인으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진 탓이었다.

여태훈 대표는 “사람들이 굳이 사회과학 책을 찾지 않았고,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매력도 시들해진 것 같았다”고 진단했다. 1991년 책방을 대학가에서 갤러리아 백화점 옆으로 옮기고 이름도 ‘진주문고’로 바꿨다. 이때부터 일반서적 외에 수험서도 함께 팔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많고, 인터넷이 없던 시대니까 그래도 지식을 구하려면 서점에 가야 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진주시민들의 ‘사랑방’이 되자는 생각으로 운영했다”고 여태훈 대표는 말한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책이 있으면 다 가져다 놓았더니 반응이 좋더라는 설명이다.
 

▲ 진주문고의 내부모습.

또한 지역의 문인들이 놀러오면서 네트워크도 이뤄졌고, 부쩍 여가에 관심 많아진 시민들을 상대로 문화유산답사 행사도 여는 등 시민들과의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에게 ‘정가정책’을 설명할 수 있었던 기회도 이 무렵부터였다는 설명이다. 지역 특유의 끈끈한 정서가 살아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들과의 소통이 각별하다는 증거였으며, 어쩌면 진주문고의 생존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의 콘텐츠를 담는 책을 기획해
진주문고의 생존법이기도 한 주민들과의 신뢰와 소통에 더해 흥미와 관심을 끄는 것은 책방의 운영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편집진열 방식’인데, 서점이 지향하는 시대정신과 지역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책이 놓여지는 ‘내 마음의 책방’이라든지 ‘월하독서’ 코너는 물론 ‘진주의 빛’이라는 이름의 기획코너 들이다. 이 코너에는 서점 직원들의 뜨거운 토론과 기획을 거쳐 선정된 책들이 배치된다고 전한다. 진주문고는 새로운 콘텐츠로 또 다른 모험을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역출판사인 ‘펄북스’의 설립이다. 지역출판사를 연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책을 팔면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도 있었지만 진주문고를 있게 해준 진주 시민들에게 빚을 갚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지역의 콘텐츠를 지역의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어내는 문화 환경을 일구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펴낸 책만 해도 십여 권이 넘고, 앞으로도 계속해 지역의 콘텐츠를 담는 책을 기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주민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고 있는 지역의 토종서점과 그 토종서점을 지켜내는 진주 시민들의 문화의식이 새삼 부러운 이유다. 

진주문고는 아파트와 학원, 독서실, 농협, 빵집 등으로 둘러싸인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식지 ‘진주소식’과 거북선·궁궐 등 장난감 모형이 눈길을 끈다. 1층에는 어린이 서적과 중·고등학교 참고서, 요리 등 실생활 위주의 서적들이 비치돼 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직원들이 분홍색 티셔츠를 유니폼으로 입은 것 말고는 여느 서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문학·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배열된 2층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지역에 관한 책’과 ‘서점에 관한 책’ 등 테마별로 배열한 서가에서 자리 잡고 있었다. 책은 권당 가격의 5%를 마일리지로 적립할 뿐, 철저히 정가로 팔았다. 창립 초기부터 시행한 정책이라고 한다.
 

▲ 진주문고 입구의 시와 일상 코너.


한편 진주문고는 지역 주민들에게 ‘만남의 공간’으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지역에 서점이 없는 걸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다니는 여 대표에게 호응이라도 하듯, 오후시간이라 그런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이다. “우리 서점을 먹여 살리는 것도 문제집입니다. 하지만 서점이 있으면 학생들이 문제집 사러 와서 놀다가 책 표지라도 구경하고 갑니다. 근처 시장 보러 온 엄마들이 애들더러 책 읽고 있으라고 서점에 맡겨두는 경우도 있고요. 다행히 시민들이 이해해줬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도서정가제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전부터 당연히 시행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진주문고에 젊은이들이 몰리듯 30대 청년이 서점의 책을 관리하고 있다. 정도선 팀장은 ‘서울을 떠나 온 젊은이’다. 서울의 서점에서 5년여 근무한 정 팀장은 아내의 암 투병을 계기로 세계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여행기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를 출간하고, 고향인 산청으로 이주하면서 진주문고와 인연을 맺었다고 전한다. 정 팀장은 여행기에서 멕시코의 서점을 소개하며 “대한민국에 다채로운 서점과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여유가 없는데 책이 무슨 소용일까”라면서 “서점 스스로도 책 읽는 독자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주문고는 페이스북을 통해 서점에서 추천하는 좋은 책뿐 아니라 ‘오늘 처음 팔린 책’ 등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가 반영된 판매현황도 매일 소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읽어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좋은 책을 고르는데 계량화된 기준은 없다지만 중요한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직관’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직관을 키우려면 끊임없이 책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야 한다. 아날로그의 힘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힘’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지역의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는 진주문고가 지역주민과 지역발전에 어떻게 공헌할지를 지켜 볼 일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