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데 시집와 도드락도드락 일해놔 이제껏 살어
황해도서 피난민들이 많이 와서 사람 겁나 많았어
우리 둘째 아들 넘 살린다고 하다 부명의로 죽었어
중신도 않구 고모가 여기 데리고 왔어. 우리 어매가 나 10살에 죽고 고모네서 컸어. 시어머니 자리도 고모네 오고 가고 했구. 옛날에 시어머니 어려서 시동상 하난데 시동상 죽고 나서 동서를 얻어 들이면 한 달 두 달 있다 나가고, 그러면 민며느리 얻어다 키워가지고 다 갖춰서 성인 시켜놨는디 다른 동네서 꾀어갔구 딴데로 시집 갈뿌구. 우리 시어머니가 자기 옷 입혀가며 사람하나 보구서 의지한다고 오고가고 그걸 고모가 보고서 그래 시집왔어. 중신애비도 여기는 별루 읎어. 시작은아버지가 고모네 다녀서 조카며느리 삼으면 괜찮다고 해서 나도 어려운데 시집와서 도드락도드락 일해놔서 이제껏 살어.
우리 시어매는 치마 둘러쓰니가 여자지 남자처럼 성질이 겁나게 무섭고 그랬어. 옛날에 길쌈하고 그랐는디 나는 고모네서 커서 그란걸 해봤깐? 바느질 같은 건 잘했어. 내가 우리 고모가 술 팔고 뭣하고 해도 여름이나 겨울이면 옷 다 꼬매서 입고 다녔어. 옛날에 자방같은 게 있었나? 죄 손바느질이지. 내가 우리 고모 본 봐서 바느질은 하는디 명주길쌈, 모시길쌈 이걸 할 줄 알아야지. 그 때만 해도 이빨이 좋았응께 무릎 이렇게 꿇고 앉아 한참 시어매 봬가지고 베를 짰네. 베 짜서 광에 쪄서 그렇게 했지. 우리 시어매가 괄괄해서 부엌에 가서 소금 넣고 물 해 놓고 끄스라고 하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한하면 부엌으로 쫓아 들어와 난리가 나 난리가. 그렇게 무섭게 살았어도 앙탈 한 번 않고 그냥 죽으라면 죽으라는 시늉하고 그라고 살았어.
이 동네가 예전에 배도 많이 부렸어. 황해도 이런데서 피난민들이 많이 와 가지구 사람 겁나 많았어. 저기 국화밭 있는데까지 물이 들어왔었어. 여기 배 닿고 천북 가는데 거기 막아놔서이 오염돼갔고 괴기가 죽어. 여기가 김 잘 매고 굴, 바지락 있고 고루고루 있었어. 여기 안 막았을 때는 우리들이 김 뜨는 기계를 2대 놔 갔구 고개 너머 오면 헌 집 거기서 여자 남자 10명씩 해 갔구 김 다 떴어, 우리가. 딴 사람이 떠 달라고 하면 떠 주고 그리 하느라고 뒤어질 뻔했네. 밤이나 낮이나 밥 해줘야지, 찬거리 해줘야지, 우리 며느리가 욕 봤지. 밥 해주고 그러니 얼마나 어렵겄나? 글고 바다를 이렇게 막으면 되겄나? 안 되지. 그래갔고 시방 여기가 썩어갔구 오염되서 괴기가 읎어. 여가 없는 거 읎었어. 여기가 보기가 이래두 이 모양 됐어.
여기 막으면서 망했당께. 보상도 한꺼번에 말하자면 어린애 자지 떼주듯 조금씩 조금씩 해주니 그거 갔다 뭐한댜. 톡 털어버리고 농사도 읎어. 논농사도 최서방네 두 집하고 김씨네 요 아래 빨간 집하구 시 집 논 져. 우리도 옛날에 우리 영감 철선 막 지어가지구 갈치, 조기 막 들이고 할 적에 동네서 2등 갔었어. 우리가 말하자면 속말로 세금 많이 낸다 했어. 그렁께 우리 시아버지가 “얘야. 그런 말 마라. 세금 많이 물고 사는 집이 밥 먹고 산단다” 그러는데 그 말이 꼭 맞어. 우리가 잡던 갯바닥 다 넘헌테 뺏겨가지구 우리 잡는 터가 좁은디 잡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딴 데 못 가고 딴데 가면 붙잡힌데 어떡한댜. 그러잖은가. 우리가 딴 나라에 갈 수 있다나? 그 사람들은 경비선이 있응께 몰래 와서 잡는디 우리덜은 조기 같은 거 잡으면 다 뺏겼어.
들키지 않으면 괜찮구 들키면 경비선한테 다 뺏기구 사람도 붙잽혀가고 그랐어. 전장 전장해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서 그렇지 무서분거여. 쭈구미, 고등어 이런거 잡아먹은데가 다 막아놔 오염돼갔고 괴기가 새끼를 깔 수가 읎어. 짐승이란 것은 다 물이 깨깟하고 돌팍 있는데 가서 알 다 까놓고 품겨서 키워갔고 나온다나자. 근디 오염되서 뻘땅이 썩어서 괴기가 와서 새끼까고 살겄나? 우리 아들이 지금도 배 부리고 그려. 지금은 하나만 하지. 옛날에 뱃동사들 타관서 돈 많이 번다구 오면 괴기 많이 잡으면 좋을텐디 괴기 안 나오면 기름값, 얼음값 다 빼고 나면 되나? 안 되지. 벌구 안 벌구 뱃동사들 돈 줘야혀. 그래야 나가지 안 그러면 버티고 안 나가. 그런께 괴기 흔할 때나 그런 짓 했지, 지금은 안 나니께 소용읎어. 어른들 그전에 말씀하는디 조개 바지락 들어올라믄 배 밑구녕서 가만히 들으면 소리가 막 솨아아~하면서 물을 쏴 가지구서 물결대로 들어오면서 그것들도 몰려다닌대.
조기 같은 거 잡을라믄 선장들은 안 자고 배 밑에 가서 쥐소리도 없이 기대고 있으믄 깨구락지가 왁왁하는 소리가 때잽이로 운대. 그라믄 선장들이 뱃동사들 깨가지고 여기가 조기 있응께 그물 치자고. 그라믄 조금 있다가 팔뚝같은 조기가 알이 툭툭 배갔고 한 배씩 잡아갔고 왔어. 그라믄 그 배가 막 그냥 기를 달달달 물에서 끌고 왔어. 아무개 배 들어온다고 해서 보믄 저 배는 떳구나, 잘된 배는 떳다구 했어. 그런 시절이 다 넘어가구 그라네.
집이서 지성을 얼매나 들인다고 그러나. 면사로 조기그물, 갈치그물 사람들 집집마다 뜰 줄 아는 사람들 한 폭에 얼마씩 주고 그물 하나에 8폭을 붙여, 치마폭 마냥 붙여. 끄트머리 가서는 괴기 들어가서 갇혀 있는디 거긴 겁나게 곱게 떠야 혀. 또 그 눔을 감침질 혀. 끄트머리에 대갔고. 처음 나갈 때는 되아지 잡았어. 그물 짜고 닻 짜고, 줄 감고. 세 가지 다 배에 싣고 떡방아 손으로 빠수고 탕국 끓이고 죽은 조상들 바쳐야 혀. 당제 지내는 그 밑에 시암 가서 동지섣달이라도 물에 성에 났으면 돌팍으로 깨치고 그 물 떠서 이렇게 세수하고 거기서 뫼를 숟가락으로 뭉쳐서 물에다 던지면 팡~팡~ 들어가. 집에서 뭐 부정하던지 잘못했으면 밥이 이렇게 까져서 하얗게 까부라져. 그러면 다시 해야 혀. 그러니 집에서 얼마나 저기 했겄나. 지금은 옛날 비하면 천지조화도 저기지. 시방은 암만 잘한다고 해도 그렇게 못 따라가지.
영감이 바람 피니께 속 썩었제, 쪼끔. 항구로만 데니고 남자들이 외지 가서 가만 있겄나? 그런데 가서 살림하다 마누라 얻어갔고 아들도 하나 놨어. 오엽이나 했으면 하는디 그 아들이 또 그렇게 똑똑혀. 첩의 아들이 똑똑허더니 그 말이 옳대. 걔도 지 어미가 이북서 왔어. 외삼촌, 이모하고 피난 왔다가 강원도가 살았댜. 인천 배들 많고 하니 조기 같은 거 떼 가지구 팔러다녔다네. 나도 우리 둘째 아들 잃었어. 8월에 철선 짓고 뺑기칠하고 9월에 작업 나갔는디 그 날 바람이 얼매나 부는지 선장이 바람 불고 들어가야 한다고 항께 바람소리 물소리로 잘 안 들리드랴. 그러다 딴 사람이 로라에 발이 갬겨서 다리 잘라지게 생겼응께 우리 아들이 뛰어 들어가서 기계를 끈다는 게 우리 아들도 로라에 갬겨갔고. 넘 살린다고 하다 부명의로 죽었어. 그래갔고 우리 영감이 울적해갔고 치매 마냥 앓다가 오래는 않고 석 달 어디 출입 못허구 누운지 열흘만에 죽었어. 덕산으로 목욕을 꼭 사흘만에 한번 씩 대니고 그래쌓는데 그래도 복 있게 죽었어.
우리 둘째 아들 서른 살 먹었으까. 우리 큰 아들이 그러대. “아부지, 나도 우리 동상 불쌍해서 내가 어려도 처랑 아버지 어머니 살아계실 동안 내가 제사 할 테니 걱정 말아유.” 제삿날 여자들이 빨래하고 목욕하고 제사 참여한다더니 우리 아들이 꼭 머리 감고 제사 지내. 우리 아들이 백점이여. 우리 큰 며느리가 다 제사 지어준당께. 시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누.
평생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주고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은 당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무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