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세계전략과 유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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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세계전략과 유학 사상
  • 경희대학교 송종서 강사
  • 승인 2018.09.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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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 유학<13>

20세기 말 중심국가 동아시아에 대한 위력 회복하며 중심국가
마르크스주의 중국화하는 과정에서 유가문화(儒家文化)의 지배
유학 사상 한족(漢族) 수호 기치 아래 애국·애족 문화의식 펼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위한 문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대역할


■ 돌아온 중심국가
아편전쟁(1840~1860) 이후 청(淸)은 일련의 불평등조약을 강요받으며 제국주의 열강에 분할 점령됐다. 상고 이래 아시아 전역에 유교문명을 전파했고, 14세기 서구 르네상스의 화약, 나침반, 인쇄술로 대표되는 물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18세기 유럽에 공자(孔子)열풍으로 계몽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이 중심국가가 19세기에 몰락한 것은 이제 옛날 일이 됐다. 20세기 말에  중심국가는 다시 초강대국이 됐다. 서양에 빼앗긴 홍콩, 마카오를 돌려받았고 타이완의 독립성을 부정하며 동아시아에 대한 예의 위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역사 및 영토 지도까지 다시 그렸다.

21세기 중국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외교상으로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동서 문명사를 다시 쓰고 있다. 19세기 이래 제국 열강이 강제한 타율적 근대화 과정을 생각하면 중국의 굴기가 언뜻 대견하고 반가울 수 있다. 그러나 국민국가 체제가 엄연하고, 누구든 자국의 성공과 승리를 지상목표로 여길 수밖에 없는 지금, 중국인이 아닌 바에야 곧 냉정을 되찾게 된다.

■ 유가 전통과 중국의 사회주의
1989년으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그해 ‘현대 중국에서 유학의 역할과 출로’(1989)라는 글을 발표한 간양(甘陽)은 유가 사상과 중국 사회주의의 공통적 요소로 도덕이상주의(道德理想主義)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유가 사상을 ‘역사상 봉건지주계급의 이익을 대변한 사상’이라고 비판하며 유가적 도덕이상주의와 결별했지만 이면(裏面)에서는 유가의 도덕이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해 왔다. 도덕과 가치관의 합리성을 중시한 점에서 사회주의와 전통사회는 친연적(親緣的)이며, 그런 연유에서 진웨린(金岳林), 허린(賀麟), 펑유란(馮友蘭), 주광첸(朱光潛), 바진(巴金) 등 걸출한 지식인들이 사상 개조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공산당에 적극 협조한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 뒤 간양이 미국으로 도피했듯이 진관타오(金觀濤)·류칭펑(劉靑峯) 부부는 홍콩으로 피신했다. 그들의 ‘유가문화의 심층구조가 마르크시즘의 중국화에 미친 영향’(1990)에 따르면 중국 사회주의는 심층구조에서 여전히 유가 전통을 답습해 왔고, 중국 당대 문화에서 전통은 하나의 구조(結構)로서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존속되어 왔다. 그러므로 중국의 마르크시즘 수용은 5·4 반(反)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1949년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지배적 사상이 되면서 전통은 표면적으로 잊혔으나 심층구조에서는 도리어 전통의 지배하에 놓이게 됐다. 곧 마르크스주의가 중국화(中國化)하는 과정에서 유가문화(儒家文化)의 지배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 중화주의와 유교 이데올로기
현대 신유가는 근현대 서양철학 방법을 참고해 송명유학을 논리화·이론화하고자 노력한 학자들이다. 그러므로 현대 신유학은 20세기의 송명유학(宋明儒學)이다. 1980년대에 중국 정부가 현대 신유학에 어떤 역할을 기대한 것은 이 문화보수주의의 애국적·민족주의적 문화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의 절대권력 앞에 당당하기를 추구한 유학의 수호자들, 전근대 도학자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은 화하(華夏)의 도리·윤리적 가치(天理)였지 절대권력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21세기 들어 중국의 정권과 유학의 ‘밀월’은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20세기 초엽과 말엽에 벌어진 중국의 위기상황에 신전통주의자(문화보수주의자)들이 유학의 깃발을 치켜든 까닭이 무엇인가? 그들은 서구의 물리적·정신적 침략에 맞서 중국문화의 정신 가치를 부르짖었고, 문화혁명의 폐허에서 또 중체서용과 유학부흥을 외쳤다. 이 천하의 중심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유학 사상은 이민족(오랑캐)을 물리치고 한족(漢族)을 수호한다는 기치 아래 애국·애족의 문화의식을 펼쳤다. 예나 지금이나 이 중심 국가에게 유교는 중화주의 가치관(세계관)의 중핵이다. 중화주의는 중화와 오랑캐를 차별하는 가치관이며 세계관(華夷觀)이다. 이 때문에 천하의 주변부는 어떻게든 오랑캐 신세를 면하고자 했으며 필사적으로 중화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한반도인의 소중화 의식이 그 전형적 사례다.

■ 중국의 세계화 전략과 신중화주의
유학이 21세기 오늘날 중국 사회주의를 위해 할 일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위한 문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대역할은 여전하다. 동아시아 역사상 유교는 화하를 천하의 중심으로 하는 국가·민족의식의 핵심가치였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이제 중국은 서구의 형식적 민주주의와 위선에 물든 세계평화 그리고 금융자본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두렵지 않다. 허울뿐인 지구화는 믿을 것이 못 되고, 따를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다. 미국과 무역 전쟁이 끝나면 시진핑 체제는 21세기 육상·해상 실크로드(一帶一路)와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그리고 상하이 협력기구(SCI)를 강화하며 중국을 세계화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현대 신유학 연구를 지원하더니 90년대 말부터는 국학 붐(國學熱)을 일으켰다. 80년대 초 민간에서 일어나 지식인사회를 넘어 사상문화계 전역을 풍미한 문화 붐(文化熱)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국학열은 국가가 기획한 전통문화 애호운동으로 주요 대학마다 국학원을 설치해 전통 학문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며 관련 사업을 일으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천안문 사태라는 얼룩진 기억을 떨쳐 내고 먼저 중국 안에서 새로운 중화주의 이데올로기를 작업하는 양상이다. 이렇게 국내적으로 전통 학술의 붐을 조성하면서 2000년대 이후 해외에 공자 아카데미(현재 공자학원)를 설립해 그 예산의 20~30%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우선 중국어 교육을 통해 자생력을 갖추게 하고 있으나 학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학 교육만을 목표로 하는 기관이 아니다. 세계적 범위에서 화인(華人) 문화 네트워크를 재정비해 신중화제국을 위한 이데올로기 재확산의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출처=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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