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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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추억
  • 이상헌(연극인, 소설가, 홍성여고 교사)
  • 승인 2010.08.27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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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온 비로 콸콸 물소리를 내며 냇물이 흐른다. 비가 왔어도 붉은 흙탕물이 아니라 아주 맑다. 아파트 아래로 보이는 월계천은 맑은 물이 아름답게 흘러서 기분이 좋다.

어렸을 적엔 비가 조금만 와도 황톳빛 물이 흘러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었다. 산은 민둥산이어서 비가 오면 토사가 그대로 씻겨 내로 흘러들어와 냇가 부근의 논과 밭을 폐허로 만들었다. 하지만 비가 그치면 냇가로 나가 고마니풀 밑이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 나무 밑 웅덩이를 반도로 물고기길을 막아놓고 발로 밝으면 붕어, 메기 송사리, 미꾸라지가 가득했다. 심지어는 자라까지도 있었다.

밤중엔 솜방망이를 만들고 거기에 석유를 묻혀 횃불을 만들고 손엔 톱과 양동이를 들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밝은 횃불을 보고 피라미 등 물고기가 보이면 톱으로 내려쳐 반 토막이 나든지 기절을 한다. 그것을 양동이에 주어 담아 묵직해질 때까지 고기를 잡는다.

가뭄 때는 물이 하류로부터 말라오는 노성천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 물이 졸아드는 것을 백로며 왜가리가 먼저 알고 와 기다린다. 점점 졸아드는 웅덩이엔 고기가 가득하다. 왜가리 백조는 손쉽게 먹이감을 구해 포식을 한다. 우리도 그 틈에 끼어든다. 조그만 송사리는 새들한테 양보를 하고 커다란 붕어, 미꾸라지, 메기, 뱀장어를 잡는다. 뱀장어는 거의 아기 팔뚝만했다. 잡은 물고기를 가져와 뱀장어는 몸이 허약한 동생을 고아준다. 미꾸라지와 다른 물고기들은 매운탕을 끓여 이웃집도 나누어주고 잔치를 했다.

벼가 익을 무렵이면 참게를 잡으러 냇가로 나갔다. 징검다리와 연결하여 참게 그물을 친다. 그물이라고 해야 참나무 등을 꺾어 내에 튼튼하게 꽂고, 나무 등걸을 주워 거칠게 걸쳐놓으면 된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가면 참게가 그물 쪽에 모여 있다. 장갑도 없이 손을 물리면서 주어 담으면 된다. 그놈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짚으로 다리를 묶는다. 다른 양념도 없었지만, 양념 넣을 것도 없이 된장만 넣어도 구수한 맛은 지금 참게매운탕을 먹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지금 냇가에 나가면 펄떡펄떡 뛰는 개구리도 없고, 송사리도 없다. 그저 오염된 물만이 흐른다. 우리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냇물은 졸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괴꼴' 이런 동요를 부르며 손잡고 뛰놀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런 동요는 지금도 불리는지, 아님 이런 동요를 부르며 천렵을 할 만한 시냇가는 있는지 우리들은 자꾸만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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