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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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5.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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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

 

봄이 깊어지면서 절 주변을 잠깐만 돌아 다녀도 푸새를 한 움큼씩 꺾을 수 있다. 특히 올해는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다는 산나물을 몇 가지 더 배운 터라 봄 향기 가득한 쌈밥을 자주 먹는다.

며칠 전에도 산행 길에 꺾어온 취나물의 향이 너무 좋아 지인을 불러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마침 다음날 제사가 있어서 식사가 끝나고 재물로 올릴 과자를 괴는데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이야기가 오가다가 유교식과 불교식 상차림의 차이점 등 폭넓은 토론이 이어졌다.

많은 이야기 중에 한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절에서 지내는 제사(祭祀)·재(齋:고통의 세계를 건너 피안의 세계로 나아감)의 상차림은 형식은 전통(유교식)을 따르고 있지만 희생제의와 관련된 것들은 배제한다. 형식에서 전통을 따르는 것은 문화의 수용과 개방의 입장이며, 희생제의를 배제하는 것은 교리적 측면에서이다.

신에게 짐승을 잡아 바치는 희생제의는 인신공양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희생제의는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심청전’은 소경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심청이가 공양미 삼 백석에 팔려 인당수에 재물로 바쳐지는 인신공양의 모습이 나타나며, 성경의 출애굽기에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인도하였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째가 태어나거든 대신하여 양 등으로 바치도록 한다” 에서 보듯이 희생제의는 아주 오래된 제사방식이다.

신에게 인간이 인간을 바치거나, 재산적 가치가 높은 짐승을 올리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신에게 올림으로써 그 만큼의 복을 받는다는 기대심리의 작용이며, 우주의 존재방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희생제의는 신 또는 신들이 우주를 창조했고, 현재도 운행을 주관한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제사방식이라면, 이것을 금하고 있는 불교는 우주 만물은 상의상관의 관계로서 상대적으로 존재하므로 모든 존재들이 가지는 가치는 같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은 마치 숨 쉬는 공기가 없다면 내가 존재할 수 없듯이 모든 존재들에게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부처님의 탄생계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존귀하다는 선언으로서 불교사상의 근원이 된다.

그래서 ‘지장경’에는 제사나 잔치를 위해서 짐승들을 잡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내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남(짐승)을 죽이고, 자녀의 결혼을 축하한다며 생명을 헤치는 것은 우주는 상대적이며,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살생의 인과(因果) 역시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많은 대화 가운데서 희생제의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을 재물로 삼을 만큼’ 타인과 자연 등을 너무나 쉽고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새겨 우리 모두 일체 모든 것은 ‘나’와 모습이 다른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홍주일보·홍주신문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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