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의 삶과 배움》을 읽고
상태바
《풀무의 삶과 배움》을 읽고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3.11.23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많은 대안학교들이 위기에 빠졌다고 말하는 요즘, 1958년 아주 작게 문을 연 풀무학교는 어떻게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을까? 가까이에 있어 궁금하면서도 쉽게 들여보지는 못했던 풀무의 공간, 사람들도 궁금했다. 풀무의 학생으로 3년, 교사로 38년을 살아온 저자가 쓴 책 <풀무의 삶과 배움>에서 궁금증들에 대한 답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풀무의 품에 있던 저자는 퇴직하며 풀무를 떠나는 길, 그냥 떠나기 아쉬워 기억 따라 느낌대로 썼다는 겸손함으로 책을 시작한다. 겸손한 저자의 말과 다르게 책을 읽고 나면 풀무 식구들의 풀무 생활이, 풀무의 역사가 머릿속에 소상히 그려진다. 풀무학교가 시작된 역사와 의미를 담은 ‘풀무학교 소개’에 이어 ‘고갱이 1’과 ‘고갱이 2’로 나눠 정리했다. ‘고갱이 1’은 개학과 입학, 창업식 등 달에 따른 순서대로 풀무의 1년 살이(한 해 한 번 하는 일들)를 담았다. ‘고갱이 2’는 동아리 활동, 열 가지 약속, 우리 말 쓰기 등 풀무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것들을 가나다순으로 담았다. 저자의 기억과 느낌에 따른 글과 함께 가깝고 먼 시절의 각 행사 및 일정에 대한 안내문, 일정 이후의 감상문, 학생들의 글, 사진 등이 이어진다. 자매학교 교류 꼭지를 저자의 말로 쓴 뒤에 2005년 교사들의 일본자매학교 방문 기행문과 사진을 담는 식이다. 저자의 범상치 않은 기억력에 한번 놀라고, 풀무의 역사를 담고 있는 글과 사진 등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모아 책으로 담아낸 데에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다. 덕분에 풀무의 공간, 사람들에 대한 경계있는 호기심을 거두고 보다 가까운 마음이 들게 됐다.
 

김현자/살림터/2만 원.

저자는 풀무의 한해살이, 일상, 함께하는 약속 등에서 구성원들의 의견들을 수렴해 거친 변화과정들을 소상히 담아냈다. 수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도록 구성한 여러 회의 구조들, 공동체가 건강하게 함께하기 위한 ‘풀무의 열가지 약속’ 등 풀무의 뼈대가 되는 소통 구조들과 풀무 식구들의 깊고 넓은 대화 속에서 살이 되어 붙여지는 약속들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풀무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그것이 풀무가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며 지속하는 힘이리라. 저자는 그 속에서 부대끼며 더불어 살아왔기에 쓸 수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때문에 이 책은 죽어있는 역사책 느낌이 아니라, 지금도 풀무와 같이 살아 숨 쉬는 책으로 느껴진다. 

그 과정들은 지난하고 치열했을 것이다. 다름이 만들어낸 치열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오히려 풀무 식구들에게 내재돼 있는 공동체 정신을 느끼게 된다. 공동체가 소통하며 역사를 함께 쌓아온 모습들이 이제 막 공동체를 일궈나가기 시작한 사과꽃발도르프학교에게 큰 귀감이 된다. 인가받은 고등학교인 풀무학교와 비교해 인가받지 않은 초중등학교인 사과꽃발도르프학교는 3년이 아닌 8년간 한 식구가 되고, 학부모님들의 경제적 기여와 활동적 참여가 보다 많다. 풀무학교보다 더 오랜 기간, 어찌보면 더 깊이 서로를 나누며 진정한 식구가 돼야 하는 사과꽃은 학교를 넘어선 교육공동체이다. 우리 안에 어떤 마음을 품으면 풀무처럼 오래 뿌리내리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농부이자 사상가, 시인이기도 한 웬델 베리는 “교육은 뒷일을 책임지게 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의 끝을 아는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사람은 그 이어짐의 어디 즈음에 있으며, 함부로 그 원을 깨거나 부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쉬운 예를 들어, 또는 밥 먹는 일에서부터 알게 해야 한다. 

저자가 인용하고 덧붙인 이 문장 속에서 풀무의 교육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모두가 생활관에서 생활하며 식구가 되고, 우리의 먹거리를 함께 만들어내는 풀무의 생활에 바탕이 되는 것 같다. 더불어 풀무에서 중시하는 ‘우리말 쓰기’에도 연결된다. 저자의 책은 한 편의 기록물이지만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 듣듯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저자가 풀무에서의 습관대로 우리말을 고심해서 골랐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뱉어버리고 쓰면 그만인 ‘말’이 아니라 말 하나에 담긴 정신, 이어가야 할 무언가를 아는 것을 생각해 본다.

책 속에서 소개돼 비로소 뜻을 제대로 알게 된 ‘끄트머리’라는 우리말이 생각난다. 끝이 또 다른 머리가 되는 원처럼 풀무의 삶과 배움은 세월을 흘러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풀무학교 1회 수업생인 이번영 선생님의 <풀무학교는 어떻게 지역을 바꾸나>를 읽으며 풀무의 삶과 배움이 지역과는 어떻게 만나는지 더 알아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