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 실어나르는 대중교통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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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 실어나르는 대중교통을 기대하며
  • 신은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2.2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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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갈 일이 있어 열차를 이용했다. 주말 표라 그런지 사나흘 전인데도 이미 매진인 시간대가 많았다. 온라인 예매로 간신히 표를 구해 기차에 오르니 홍성역에서부터 좌석은 물론 입석도 붐볐다. 아산역쯤 가서는 입석 승객이 많아 정차와 개문을 확인해야 하는 역무원도 승객들 사이를 빠져나가느라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서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불편한 상황. 기후위기시대, 대중교통은 ‘시민의 발’이자 ‘탄소배출을 줄이는 쉬운 방법’으로 언급되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히 제공되고 있을까?

주말 열차 좌석이 부족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홍성에서 서울 가는 열차는 목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서울에서 홍성 오는 열차는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매진일 때가 많다. 수요에 비해 열차 배차가 적다. 열차가 없으면 버스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버스 사정도 좋지는 않다. 

시외버스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버스 운행 노선이 줄고 배차 간격도 커졌다. 코로나19 격리 의무가 해제된 이후에도 고속·시외버스 노선과 배차는 회복되지 않았다. 각각 하루 6회와 2회 운영되던 동서울, 남부터미널 노선은 사라지고, 운행횟수가 대폭 줄거나 사라졌다. 가까운 공주만 해도 2019년에는 하루 10회 운행됐는데, 지금은 겨우 2회 운행된다. 어쩌다 있는 버스시간에 맞추기 어렵다보니 버스를 이용하지 않게(못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수요 감소, 적자노선이라는 이유로 서비스는 더 축소된다. 

접근성의 문제도 크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표를 구매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이 어렵거나 익숙하지 않고 여건이 되지 않는 디지털 약자가 있다. 실제로 열차에서 좌석 없이 서있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이주노동자가 많다. 

지난해 9월 홍성버스터미널에는 매표원이 사라지고 무인발권기가 설치됐다. 버스표를 끊다보면 무인발권기와 씨름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최근 관리직원 1명이 사무소에 상주하며 승객이 호출벨을 누르면 직접 나가 발권을 안내하고 있다. 실제로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2021년 9월부터 무인발권기만 운영했던 공주터미널은 주민들의 불편 호소(“눈도 침침한데다 기기조작이 서툴러 애를 먹는다” 등)로 2022년 1월 유인 발권창구가 회복됐고 시민들이 크게 환영했다고 한다. 

노인들도 디지털교육을 받고 바뀐 시대에 적응해야 하니 뭐니 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대중교통이고, 그래서 대중교통이 공공의 영역에 있는 것 아닌가.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30%를 넘는 지역에서 유인매표소를 운영하는 건 ‘비효율’이 아니라 ‘복지’나 ‘돌봄’의 영역일 수 있다.    

홍성시내와 읍면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타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저러다 곧 없어지는 거 아닌가 다들 걱정하지만, 등·하교 시간이나 장날에는 사람이 많다. 하루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 병원에도 가고 시장에 농산물도 내는 동네분들을 보면, 마을 구석구석 들어가는 버스가 새삼 고맙고 소중하다. 버스가 줄고 없어진다는 것은 결국 사람도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교통부문은 전 세계 온실가스배출의 약 15%를 차지한다. 그만큼 대중교통의 위상과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단순히 기후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보편적 이동권과 기회를 제공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기후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어떻게든 탄소만 줄이면 된다는 식의 ‘탄소환원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차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작아지지 않고, 편리하고 당당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기후변화도 막을 수 있다. 기후변화를 막고자 하는 것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라는 점을 명심하자.  
 

신은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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