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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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
  • 김혜진 <홍성녹색당>
  • 승인 2024.02.0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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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코다’라는 영화를 봤다. ‘코다’는 보통 청각 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를 말한다. 주인공 루비는 부모님과 오빠가 모두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어 수화를 통해 세상과 가족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합창반에서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음대에 응시할 준비를 하게 되지만, 가족들은 루비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처지라 마음이 편치 않다. 생선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경매에 참여하고 가격을 협상하는 일을 모두 루비가 해왔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청각 장애인의 현실을 절절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한 잔 하는 시간, 함께 둘러앉은 루비의 아빠와 오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대충 눈치를 보며 따라 웃을 뿐이다. 일터에서 토론이 벌어져도, 루비가 오지 않은 날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의견을 낼 수도 없다. 무대를 보면서도 사랑하는 딸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들을 수 없다.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감탄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장면은 특히 가족들의 시점에서 음소거로 처리해 보여주는데 뒤통수를 정말로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TV 화면에서 종종 수화 통역 서비스를 볼 때는 무심했던 내가 영화를 보면서는 곳곳의 장면에서 수화 통역의 필요성이 너무나 절실하게 다가왔다. 언제 어디서나 모두를 위한 배려는 정말로 너무나 필요하다! 이런 깨달음은 영화로 루비의 가족들에게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다.
 

백정연/유유/1만 2000원.

조그만 핸드북 형식으로 출간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은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저자 백정연이 들려주는 장애인들의 실제 삶을 통해 우리의 좁은 시야를 넓혀준다. 이제는 많이들 ‘장애감수성’을 이야기하지만 장애인 각자의 다양한 일상은 아무도 모르기에 루비 가족의 일상을 보기 전의 나처럼,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불편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우리가 선의를 가진 진보적인 시민으로서 장애감수성과 장애인권을 말하더라도 ‘막연히 옳은 일에 동의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 백정연 씨조차 15년 넘게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왔지만 남편과 결혼한 이후 그동안 쌓은 모든 지식이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비장애인의 태도로 장애인을 돕는 법’일 뿐이었단 걸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어려운 법과 제도 이전에 개인적인 공간에서 장애인이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책은 20개 꼭지의 짧은 글로 우리가 몰랐던 장애인의 일상과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가면 좋은지 등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짧은 외출 시 보통 비장애인들은 약속장소를 핸드폰으로 확인하고 경로검색으로 교통수단을 선택하고 20분 거리이면 넉넉하게 30분 전에 출발한다. 한편 휠체어를 타는 이들은 약속장소의 건물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문의 크기, 자동문 여부, 경사로인지 계단인지, 경사 정도, 층수,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 여부…. 이건 시작에 불과하며 지하철, 버스 탈 때 휠체어로 접근 용이한 노선인지 그리고 식당이 좌식인지 입식인지 식탁 높이는 어떤지 등등 미리 파악해야 할 것은 차고 넘친다. 읽기만 해도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외에도 척수장애를 앓고 있는 남편의 장애 특성상 대변을 볼 때 화장실에서 최소 2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퇴근이 늦으면 저녁 내내 화장실에서 보내고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한다든지, 볼일이 있었는데 용변을 보느라 취소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깨알같이 구체적인 장애인의 일상을 이야기해 준다. 

각 장애의 특성과 그 사람의 일상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15년 경력의 활동가도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잘 알지 못했던 건 조금 위안도 되지만 한편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싶어 울적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각각의 장애에도 그 정도에 따라 양상이 매우 다양하며 장애인끼리도 잘 알 수 없는 부분이라, 많은 장애인을 그저 ‘그 사람’으로 만나고 알아가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이 따듯하고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똑같이 모두 다르며 서로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 당신과 내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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