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전장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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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전장의 기억
  • 최복내 홍성그린리더 회장
  • 승인 2013.01.11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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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들어 한가한 시간이 나를 지배할 때 나는 내 자식에게 내 얘기를 알아듣건 말건 이 아비가 옛날에 전쟁터에 갔었다는 얘기를 할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서 가장 깊숙하게 내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었던 시절이 전장에서 보낸 1년이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옛날 같기만 하지만, 버스를 타고 피곤한 몸으로 시내를 방황하거나 야근을 끝내고 새벽 두 시에 텅 빈 거리를 휘돌아 집으로 오노라면, 내 머릿속에는 섬뜩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이 떠오르고, 이 세상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그들과의 시간이 아쉬워진다. 나는 인간이 숭고해 질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것을 월남에서 배웠다.

아무런 조건없이 만나서 같이 살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숙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섰던 전우들에게서 나는 가장 참되고 솔직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인간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적과 마주하는 전선에서 고향의 어머님과 그리운 친구들을 그리며 외로움에 파묻혀 무거운 밤의 어둠을 응시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홀로 헤아리는 병사들을 가끔 생각한다. 물가가 어떻고 승진이 어떻고 봉급인상이 어떻다고 따져 대는 도시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외로움을 홀로 삼키는 병사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해안가 초소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달이 무척이나 밝았던 월남의 어느 고지에서 개인 호속에 몸을 숨기고 밤을 지새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생과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분주히 돌아가는 시간에 쨍쨍 쪼이는 태양 아래서 혼자 죽어가는 병사를 본 일이 없는 사람은 그토록 두려울 것만 같고 처절하기만 한 비극처럼 여겨지는 전쟁이 또한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역설도 진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총탄에 맞아서 죽어가는 병사는 영화에서라면 구성지게 어머니를 외치고 극적으로 몸부림치며 마지막 숨을 접는다. 그러나 죽는 순간에 어머니와 애인을 찾는 병사는 없다. 그들은 소대장님을 찾는다. 그것은 소대장이 아니라 친구를 부르는 소리다.

"소대장님 나 죽어 나를 살려줘요" 이렇게 말하며 죽어가는 병사의 눈에는 소대장이 아마도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친구라고 여겼을 것이다. 재산상속을 놓고 아웅다옹 하는 형제나 어설픈 세대차를 읊는 부모보다 훨씬 가까운 친구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죽음을 함께 보고 죽음을 나눈 전우들이 느낄 수 있었던 우정보다 더 짙은 사랑은 아무데도 없다. 나는 그것을 월남에서 돌아온 지 한 달 쯤 돼서 영 밖에 나와 저마다의 사람들의 표정에서 느끼고 말았다. 어느 날 다낭 비행장에서 헬기를 기다리다가 전사한 청룡 병사들을 다낭앞바다 화장선으로 가기 위해 미군 수송기로 옮겨 싣는 장면을 먼발치서 목격하게 되었다. 캔버스 자루에 담긴 시체를 인계한 한국병사와 인계를 받은 미군병사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인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과연 무슨 언어가 필요 했겠으며 무슨 얘기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었으랴. 삼각형으로 차곡차곡 접은 태극기를 주고받은 두 병사가 차렷 자세로 서서 서로 경례를 붙였을 때, 그들은 유엔의 목적이나 인류에의 철학은 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음보다 더 설득력이 강한 웅변은 없었다.

나는 어느 소단위 부대에서 첫 전사자가 났을 때 모든 병사들이 침울에 잠겨 말을 끊고 분노를 침묵으로 짓누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사건이 그들 자신에게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느꼈으며 그들에게 동정이나 감동을 일깨우기 위해 연설이나 웅변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전쟁에서는 인간은 함께 느낀다. 그들은 순간을 함께 나누고 영원을 함께 소유했다. 한 키도 넘는 갈대밭을 해쳐가며 기다랗게 한 줄로 행군하고, 짙은 녹색의 대나무 숲을 더듬어가고 마구 엉킨 덤불을 벌목도로 해치며 진군하던 그들이 결국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을 지언정 그들이 모두 함께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외롭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작전 중에 산등성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대낮에 깜박 졸았을 때 어릴 적 고향에서 놀던 앞마당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내가 만난 수많은 병사들도 살아서 돌아 왔다. 부산항에 도착해서 어느 여성이 겨울바람에 치마가 날리지 말라고 손으로 움켜쥐고 불러주던 개선의 노래를 들었다. 나도 살아서 돌아왔다. 그러나 죽음의 강렬한 인상은 전쟁터에 남기고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전장에서 어린 시절 꿈을 꾸었듯, 대도시의 소음 속을 오가며 월남의 죽음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디엔반 야간전투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박격포탄의 한가운데 엎드려 있을 때나 파편을 튀기며 불꽃놀이를 하던 포탄들이 깨지는 소리를 등지고 숲으로 피신하던 순간이나 비 오는 1번 도로를 좌우로 눈알을 굴리며 지프차로 이동하던 순간에 나는 죽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모두 잊혀 질만한 지금, 그 모든 것들이 다시금 내 머릿속으로 되 찾아온다. 죽은 베트콩의 지갑에서 나온 아내와 아이의 사진이, 남편을 잃어서 18세과부가 되어 결국 창녀가 된 젊은 수많은 월남 여인들, 크레모아에 하반신이 찢겨 달아나고 창자가 나온 베트콩시체, 부비트랩에 양다리를 잃고 내 다리가 없다고 울부짖던 젊디젊은 한 마리의 청룡,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스치면 나는 인간만이 전쟁을 꾸며내고 치룰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엄청난 모순에 답답해하면서도 그 비극 속에서도 모든 외로움과 아픔을 이겨내는 인간의 모습에, 그리고 나도 인간의 하나라는 사실에 흐느끼고 만다. 그리고 왜 사람들은 전장에서처럼 참되지 못하고, 그토록 왜소한 존재가 되기를 만족해하는지 역겹기까지 하다. 그래서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두고두고 마음속에 정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 자식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손자가 나와 대화의 상대가 될 때 언젠가 이 아비가 이 할애비가 전쟁터에 갔더니 그곳에 인간이 있었고 그 인간이 어떠했다는 얘기를 해 줄 작정이다. 그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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