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가(家)문화가 만드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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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가(家)문화가 만드는 정치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02.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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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국인이 한국생활에서의 황당함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음식점에 갔을 때 같은 돈을 내고 먹는데도 단골과 일반손님이 구별되며, 거기에 고향사람이면 대접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처음 가는 곳인데도 말투 등을 통해서 서로의 고향을 묻고 만약 고향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특별대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기야 가족 중에 종합병원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만 있어도 수술날짜를 잡기가 수월하고 없다던 병실이 생기며, 심지어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아는 사람을 통하면 조사관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하니…… 그래서 우리는 간단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을 때도 아는 사람을 통한다. 이것은 잘 잘못을 따지기 전에 우리의 정서이며 문화이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정서는 가(家)문화에서 나온다고 한다. 최봉영은 『한국문화의 성격』에서 "유교적 삶에서의 가(家)는 개인에 우선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존재한다. 개인은 '가'에 속해서 태어나고 '가'에 속해서 생활하다가 '가' 속에서 죽어간다. '가'는 가족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이전에 전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은 '가'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소속원으로 존재한다. 가족이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에게는 '가'를 구성하거나 파괴할 권한이 없다. '가'는 세세상전(世世相傳)하는 하나의 독자적인 조직으로서 소속원을 조직하고, 생업을 영위하고, 종교적 의례를 거행함으로서 스스로를 실현한다"는 전제하에 '가'를 크게 친친(親親)에 입각한 본가(本家)와 '생명의 마음'이자 '사랑의 이치'인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인민(仁民)의 국가(國家)로 구분한다.

친친의 본가는 생명 즉, 혈연의 관계로 친소의 등급에 따라 구분을 두지만, 국가는 문화적 생명체에 근거한 공식적 집단으로서 이를 움직이는 것은 애민(愛民)의 원리이며,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대동(大同)의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본가가 가지는 친소의 구별과 배타적 속성이 국가가 가지는 의(義)에 녹아들 때 본가 중심의 신체적 생명과 국가중심의 문화적 생명이 상보(相補)관계를 이루어 충효양진(忠孝兩盡)의 경지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위와 반대로 친친(親親)의 본가가 의(義)와 대동(大同)의 국가를 우선하게 되면 그야 말로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내 새끼 제일주의'와 "우리가 남이가!"식의 '지역 배타주의' 등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집안의 명예를 위해 (남의 자식인)며느리를 죽여서라도 열녀를 만들고, 숙종재위부터 시작된 (붕당인)노론세력이 조선멸망 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치현실이 여기에 속한다 하겠다.

이 같은 현상은 측근들의 비리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지로 비춰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이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추천 등과 18대 대통령 박근혜 당선자의 밀봉식 인사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당선자가 말하는 대통합은 국가 즉, 인민(仁民)과 애민(愛民)을 바탕으로 의(義)가 기준이 되고, 차별 없는 대동(大同)의 정신이 구현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라고 본다. 앞서 말했듯이 적어도 우리의 정서에서는 국가는 여러 본가(本家)와 업가(業家) 등을 '의'와 '대동'의 입장에서 조율하고 통합하는 큰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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