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은 어떤 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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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어떤 색일까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03.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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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홍성의 봄은 어떤 색일까요?"라고 독자님들께 여쭈어 본다면 무어라 대답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홍성의 봄은 동해로부터 올라오는 샛바람과 태백산을 넘어오는 하늬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번갈아 불어대는 통에 봄 처녀 바람날 여유도 없이 곧바로 여름이 되어버리는 내 고향과는 사뭇 다르다.

좀 더 넓게 보면 봄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북극사람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그래서 봄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표현할 때 사는 곳과 개인의 경험에 의해서 달라진다. 특히 마음속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그림 등은 더욱 그렇다.

색채심리학에서는 고향은 기억되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각인되어 일생동안 심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하고 태어났던 산천에 다가서면 포근함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듣고 마셔온 고향의 소리, 공기, 물, 냄새 등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육체가 되고 생각이 되며 마음이 된다. 굳이 '행동주의 학습이론'이나 '맹모삼천지교'를 말하지 않더라도 탄생과 동시에 처음으로 접하는 고향의 경험은 세상에서 얻는 최초의 정보이며 사리판단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저마다 좋아하는 색이 있고 스타일이 다른 것은 반드시 그것을 좋아 하게 된 계기(경험)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해서 "~~스타일"이라는 동영상들이 넘쳐나고,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강남스타일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강남스타일은 음악과 춤이라는 장르 안에 있다. 이처럼 춤과 음악이 강남스타일의 고향이라면, '~~스타일'은 강남스타일이 고향이 되는 셈이다.

살펴보았듯이 모든 것에는 자기만의 색과 모양이 있으며, 그렇게 된 원인으로서 고향이 있다. 그렇다면 홍성은 홍성 나름의 색과 모양이 있을 것이다. 이왕 색이야기가 나왔으니 세계적인 미술가인 이응로 화백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홍성군은 이응로 화백의 생가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라면 그가 예술세계를 펼쳤던 독일 등지에 비해서 그 설득력은 매우 떨어진다. 그런데 이응로라는 한 인간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경험했고 최초의 육신과 정신을 키우고 만들었던 각인된 고향의 색과 모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 속에 베어나고 살아 숨 쉰다는 입장에서 보면 홍성이 전부가 된다.

따라서 비단 이응로뿐만 아니라 홍성이 배출한 걸출한 인재들과 계승발전 시켜온 문화 예술 언어 등에서도 홍성의 색과 모양을 찾아내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작업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수수방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홍성의 색과 모양이 없다는 것은 특색이 없는 것이며 결국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유의 색과 모양 없는 기념사업을 벌이는 것은 그야 말로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고, 관계자들만의 잔치이며, 매일매일 발생되는 유지·관리비용의 부담은 열악한 지방재정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끝으로 올 봄, 홍성의 색을 찾아보는 일들을 시작했으면 하는 제안을 드려본다. 예를 들면 <이응로와 홍성의 색>, <만해를 키워낸 홍성의 정신>, <한성준의 춤사위와 홍성의 자연> 등의 일들이 전문가 몇몇이 아니라 군민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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