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길 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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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길 반야
  • 범상<오서산 정암사 스님·본지 칼럼위원>
  • 승인 2013.05.2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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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지혜(般若智慧)'를 상징하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세상을 밝히며, 부처님오신 날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반야지혜'라는 단어는 불경이 중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반야는 산스크리트 Prajna(프라즈냐)의 음역이다. Prajna는 무분별지(無分別智) 또는 지혜(智慧)로 의역되지만 당시 중국(동양사상)에서는 일치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Prajna는 그간 중국인들이 알고 있던 지혜(智慧)와는 다른 개념의 지혜임을 나타내기 위해 음역과 의역을 함께 사용하여 '반야지혜'라고 표기했다.

어떤 사물의 예를 든다면 Prajna는 '있는 대로 아는 것'이고, 지혜는 '보이는 대로(경험한 대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방울의 물을 관찰함에 있어 사람의 능력 차이가 어떤 사람은 ①육안으로 보는 수준이고, 또 어떤 사람은 ②육안과 돋보기를 이용해서 보는 정도이며, 또 어떤 사람은 ③육안과 돋보기와 현미경으로 보는 것과 같다면, ②는 ①보다 지혜롭고 ③은 ②보다 지혜롭다고 한다. 여기에 반해 Prajna는 물의 본래모습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혜는 어떻게 설명하든지 간에 마음(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라면 Prajna는 마음(관념)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의 자각(自覺)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세계라 할 수 있겠다.

중생이 반야지혜를 갖추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분별이 일체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적분별을 통해서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흔히 말하는 '춥다 덥다', '많다 적다',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등등 이미 나름대로 정해 놓은 어떤 기준이 있거나, 아니면 '~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어떻다'고 판단한다. 미국에는 '부자란! 여자형제의 남편인 동서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유사한 우리 속담은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이다. 이와 같은 격언들은 (어떤)상대와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것을 사회현상에 적용해 보면, 현재 우리 사회는 자본가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고통의 늪에 빠져 있지만 정작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하겠다. 예를 들면 옷은 몸을 보호하고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입는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광고 등을 통해서 명품을 입지 않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 결과 휴일 날 잠시 짬을 내어 뒷동산을 오르는데도 히말라야 등반수준의 등산복과 장비를 경쟁적으로 갖추고, 아예 옷과 장비를 자랑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음모와, 탐욕이라고 표현되는 남보다 우월해지려는 분별심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여기에서 옷은 본래 목적과 기능보다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껴 고통을 일으키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록 경제력이 좋아진다 해도 시간이 갈수록 상대적 빈곤의 고통은 커지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서의 소비도 함께 늘어난다. 자본가들은 상대적 빈곤을 조장하는 것도 모자라서 아주 편리한 '소비서비스' 제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좋은 예가 '공짜 폰', '할부' 등과 '신용카드'는 물론 통장에 있는 돈을 현금처럼 사용 할 수 있도록 편리를 제공하는 '현금카드'와 사용할 때마다 생기는 '누적 포인트' 등 그야말로 '소비는 천국이요, 마음은(하루라도 쇼핑을 하지 않으면) 지옥'인 나날의 연속을 만들어 낸다.

하여, 부처님오신 날을 계기로 잠시 마음을 쉬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위에서 열거한 상대적 빈곤을 관찰하는 여유와 습관을 가져 보았으면 한다. 이러한 습관의 변화는 머지않은 장래에 '바람이 잦아진 호수에 물결이 그치고 잔잔한 수면 위에 달빛이 그대로 비추어 들듯'이 번뇌에 가려져 있던 Prajna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환희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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