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5월의 들녘에서
상태바
[세상읽기] 5월의 들녘에서
  • 권기복(홍주중 교감, 칼럼위원)
  • 승인 2014.05.08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월의 첫 연휴는 4일 간의 황금연휴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쳐 내리 휴일이 계속되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상처는 현재 진행형이었지만, 사람들은 경건한 마음 가운데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나들이를 나갔다. 또한 산자락 곳곳에 있는 절을 찾아가서 석가부처님 탄신일을 축원하였다. 게다가 주중에 끼어있는 어버이날을 위해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고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청주 큰 여동생 댁에 가 계신 어머니가 오셔서 청주까지 찾아가야 하는 수고로움은 덜 수가 있었다. 대신 누이들과 조카들이 함께 와서 북적거림 속에 하루를 보냈다. 얌체(?)같이 어린이날 결혼식을 올린 지인이 있어 결혼식 축복을 해주러 온 문학 동지들과 함께 어울리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모셨다. 10여 년을 병중에 계신 분이기에 조금만 관심을 덜하면 서운해 하는 정도가 그만큼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위의 시간들을 제하고는 새벽부터 깜깜해지는 늦은 오후까지 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용봉산 아래 퇴임 후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기 위해 10여 년 전에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경작을 하시는 분이 있어서 가끔 먼발치로 지나치곤 했는데, 갑자기 경작하던 분이 돌아가셔서 스스로 경작을 해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봄에 회초리 같은 과수묘목을 사다가 듬성듬성 심어놓았다. 그런데 풀은 정말 쏜살같이 자랐다. 그래서 이번 황금연휴의 목적은 풀 제거 작업이었다.

만만치 않았다. 생각대로 하면 하루에 네 고랑씩 작업을 하면 마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첫날부터 목표치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였다. 마음이 다급해지자 피로감만 더욱 엄습하였다. 결국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하는 대로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노동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하니 주변의 풍경과 소리들도 잡혔다. 용봉산 봉우리에서 ‘야호!’를 외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내가 풀맨 자리를 따라오며 벌레를 찾아먹는 뱁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만 큰 몸짓을 하면, 새들은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나는 새들을 안배하여 주기로 하였다. 이쪽 고랑의 풀을 어느 만치 매면, 자리를 옮겨 멀찍이 떨어져서 다른 고랑의 풀을 맸다. 새들은 또 다른 친구들까지 불러와서 마음대로 지저귀며, 벌레를 찾아 먹었다. 오금 다리가 저리고 허리 아프면, 기지개를 켜고 산과 들녘을 휘 둘러 보았다. 어떤 시인이 ‘꽃보다도 단풍보다도 신록이 더 아름답다’라고 한 것처럼 신록의 아름다움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또한 생명의 신비와 함께 생동감을 충만하게 해줬다.
일찍이 노천명(1912~1957)은 그의 시 ‘푸른 오월’에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다. 청자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당 창포잎에-여인네 행주치마에-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이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같이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5월은 봄의 끝부분이자 여름의 시작부분이다. 산하의 신록은 무섭게 푸르러갈 것이다. 초순의 날씨는 조석으로 쌀쌀한 편이지만 한낮에는 다가오는 여름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쨍쨍해진다. 중순을 넘어서면 한낮에는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지고 그늘을 찾게 된다. 개구리들도 긴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와글거리기 시작한다. 일찍 우화(羽化)한 매미들이 섣부른 여름을 노래하기도 한다. 아카시아 꽃의 진한 향내는 벌과 나비들을 절로 춤추게 한다.
봄이면서 여름인 듯싶은 계절이기에 흔히 5월을 청소년에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청소년이야말로 신체적으로 왕성하게 자라서 어른인 듯싶으면서도, 아직 정신적 성숙이 그에 못 미쳐 어른은 아닌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중요성은 그 푸르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매의 결실을 결정짓는 시기이도 하다. 250여 명의 5월 같은 청소년을 앗아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그래서 더욱 애통한 이유인 것이다.

이제 5월이다. 우리 모두 5월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자. 4월의 아픔은 가슴에서 쓸어내고 활기를 되찾도록 하자. 다만 그간 1년이 안 된 사이에 벌어진 ‘태안 백사장 야영 수몰 사건,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건, 진도 세월호 침몰 사건’ 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적의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자. 또한 사건 당시에만 와글와글 거리다가 까맣게 잊어먹던 전례를 과감하게 탈피하여 보자.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다거나 후회하지 않고 떳떳하고 자랑할 수 있게 만들어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