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행복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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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행복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5.01.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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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아이 낳기가 무섭다’라고 한다. 그래서 아예 결혼을 생략하거나, 결혼하고도 아이 낳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도 ‘딱 한 명만 낳아서 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출산율이 1.28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달리고 있으며, 고령화 수치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이는 한국의 인구가 출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망인구가 그만큼 적어서 유지된다는 것이다.

우리 홍성지역만 보아도 한 세대(30년) 전에 수백 명이던 초등학교들이 20~30명이 없어서 줄줄이 폐교되고 있으며, 면소재지 초·중학교들도 폐교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필자의 근무지인 중학교는 홍성읍내에 위치하여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2~3년 사이로 600명대의 학생들이 500명대로 줄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실제로 학급수의 감축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시골 지역에서 ‘아이울음 소리가 끊긴지 오래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이 모여 사는 대도시의 초.중학교들도 근래에는 증가보다는 감소추세로 전환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누려야 할 인간의 행복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왜 그들은 ‘가족’이라는 우리 속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행복과 이 세상을 살아갈 예비 자녀의 행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서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2013년 기준 자녀 1인당 3억 896만원의 교육비를 쏟아 부어야 하며, 그 후에도 결혼시키고, 집사주고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하는 만큼 능력 밖이라는 것이다. 예비 자녀 또한 그들처럼 유년기부터 한국교육의 틀 속에서 번데기처럼 숨 막히게 살다가 장년이 되어서야 빠져나오면, 취직이라는 덫에 걸려 힘찬 날갯짓 한 번 못하는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현실에 뒤얽힌 정서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홍주골 골짝마다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언제, 어디에 살던 우리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아이들의 부모도 자식 키우는 행복을 큰 부담 없이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와 개개인의 획기적인 노력과 전환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하여 출산장려금 지원, 사교육 줄이기 정책 등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몇 푼어치의 지원과 보조를 받는다고 천문학적인 부담을 떨쳐낼 수가 없다. 사교육비 줄이기 노력은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으로 사교육비가 아주 현저하게 줄은 것처럼 통계가 나오곤 하지만, ‘아주 현저’라는 그 자체가 거짓된 정체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의 정책적 통계자료를 외국 사람들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선량(選良-엘리트)의, 선량에 의한, 선량을 위한’ 특별 우대정책을 버려야 한다. 즉, 정부는 국민 모두에게 취업의 기회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직업 간 소득의 격차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의사, 판검사, 대기업 회사원이던 제빵사, 미용사, 농부, 어부이던 소득 차이를 최소화한다면, 모두 다 할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면 사교육에 허리 휘고, 눈 침침해질 일이 있겠는가. 주택문제도 신혼가족들에게 월세 식의 장기 임대(30~40년) 주택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면 누가 내 집 마련 때문에 결혼 못하고, 젊음을 통째로 저당 잡히려 하겠는가.

개인적으로는 타인과 비교우위를 따지며 사는 바보가 안 되기를 빈다. 누가 천만 원짜리 손가방을 가졌다고, 내 것 일십만 원짜리 가방에 비교하지 말자. 요즘 일십만 원짜리 가방도 참 질기고 예쁘다. 누가 150㎡ 이상의 집에 산다고 부러워 말자. 2㎡이면 부부가 충분히 누울 수 있고, 60㎡ 정도면 한 가족이 오순도순 살 수 있다. 집 커봐야 괜히 청소할 일만 많아진다. 한 가지만 더 요구한다면, 자기 자식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집착은 껍질과 같아서 어릴 때는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지만, 나날이 성장하는 청소년에게는 심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 판단력과 주도력이 결여된 ‘마마보이’는 집착의 산물이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부와 우리 어른들의 획기적인 노력과 전환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개구쟁이라도 튼튼하게 자라면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느끼지 않고,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활짝 열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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