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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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다시 읽으며
  • 이원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12.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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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실존철학의 비조로 알려진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인간의 불안심리가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요즘 들어 많은 이들이 정치, 경제, 외교, 교육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불안한 마음으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마치, 안개 속에서 너도나도 빨리 나가려고 곡예운전을 하고 있는 차에 올라탄 승객의 처지 같다고나 할까? 이런 기분이 지속된다면 생병이 나고 말리라. 마음부터 다잡고 보자. 그렇지! ‘삼국지’를 다시 읽어 보는거야. 소설 ‘삼국지(연의)’도 다시 읽어봐야겠지만 역사책 ‘삼국지’를 읽으면서 난세를 헤쳐나간 영웅 호걸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삼국지’의 무수한 인걸 가운데 이런저런 면으로 가장 도움이 될 인물은 누구일까? 그 험난한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패업을 이룩한 조조, 유비, 손권을 빼고는 얘기가 안될 것이다.

소설에서나 역사책에서나 가장 폭넓게, 눈부시게 활약한 인물은 조조였다. 그러나 패업경쟁의 출발선상에서는 조조보다 유리한 인재들이 많았다. 단연 발군의 걸물은 4대에 걸쳐 승상을 배출한 명가 중의 명가의 귀공자 원소였다. 그밖에도 산동일대의 패자 공손찬, 원소의 4촌 동생이자 맨 먼저 황제를 참칭했던 원술, 형주의 유표, 마등, 마량, 마초등, 마씨네 준걸들, 강동의 손견과 아들 손책, 손권 등도 내로라하는 영걸들이었다. 엄청난 호적수들을 거의 다 제압한 조조는 환관의 양아들의 아들이었으니, 원소하고는 애시당초 싸움의 상대가 되지도 못했다.

조조는 이를 일찍이 깨닫고 명문거족의 자제들과 소년시절부터 가까워지고자 무진 애를 썼다. 또한 황제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유리한 발판으로 삼았다. 어릴 적부터 친했던 조조와 원소는 결국 둘 중 하나는 쓰러져야 할 운명임을 깨닫고, 이른바 관도 대전을 벌이는데…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위에 섰던 원소가 조조에게 패하고 분사한 뒤. 천하는 조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둘 간의 싸움에서 성패를 가른 것은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조조는 상황판단,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 결단력, 담력 따위에서 원소보다 앞섰다. 반면에 원소는 자만심이 지나쳤고, 준비태세, 상황판단, 예견, 행동력 등이 조조보다 뒤떨어져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한편, 손권은 전투의 귀재 손책이 화살을 맞은 후유증으로 26살의 나이에 죽자, 19살의 나이로 형 손책의 동갑이자 조력자였던 주유와 후덕한 부잣집 아들 노숙의 도움으로 패업의 기초를 닦는다. 게다가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왔으니. 화북 일대를 모조리 제압한 조조가 거드름을 피우며 항복을 권해오자, 맞서 싸우자는 주유와 노숙의 중재로 마침 형주의 유포 밑에서 식객노릇을 하면서 제갈량을 책사로 모시게 된 유비와 연합전선을 펴게 된다.

조조의 80만 대군과 이에 맞서는 손권의 군대 3만에 유비 및 유표의 아들 유기의 연합군 2만여 명이 맞서는 적벽대전! 이 거대한 싸움 끝에 천하는 삼국 정립의 시대의 서막이 오른다. ‘삼국지’에는 소설 삼국지와는 달리 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화공법이 제갈공명의 묘책이라기보다 총사령관 주유의 부장이었던 황개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기록돼있다. 아무튼 적벽대전을 계기로 유비는 제갈공명의 보필을 받으며, 형주를 발판으로 하여 사천성에 터를 잡아 촉(한)을 건국한다. 하지만, 삼국지 전편에 걸쳐 최고의 장수로 불리게 된 관우, 개장수 출신의 장비, 소리 소문없이 뛰어난 상산 조자룡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던 유비가 끝까지 살아남아 소열(황)제가 된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사서에는 그가 동한(후한) 경제의 아들 중산정왕의 후손으로 나온다. 조조가 일찍부터 유비를 수하로 데리고 있으면서 원소보다도 유비를 자신과 더불어 유일한 영웅으로 인정했으니, 빈털터리 유비가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던게 분명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가 조조 못지않은 인재였음을 보여주었으니, 그는 어떤 시련 속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른바 기대기 작전이랄까,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빈대붙기’의 대가였다.

그가 의탁했던 준걸들은 공손찬, 원소, 조조, 유표 등 수없이 많다. 그 시련의 세월 중에는 여포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아내와 관우가 조조에게 잡히기도 하는 등의 숱한 어려움이 있었으나, 형주자사 유표에게 의탁하는 동안 알게 된 제갈공명을 군사로 영입하게 되면서 끝내는 위대한 인간 승리를 거둔 것이다. 헌데, 삼국지의 왕빈대 유비에게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인간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하의 영걸 조조가 그토록 탐내던 장수 관운장이 끝끝내 조조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유비에게 돌아왔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것도 천하의 명마 적토마까지 선물로 받으면서…

이원기<청운대학교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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