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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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37
  • 한지윤
  • 승인 2020.04.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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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군사는 제발 말도 좀 소생시켜 달라고 애원하면서
“저는 백제군의 탐색군입니다. 사흘 전부터 이곳에 잠복해 있었는데 오늘 오전에 고구려 군사 천여 명이 쳐내려오고 있더군요. 그래서 급히 박기성으로 가는 길에 그만 말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럼 고구려군이 지금 박기성으로 쳐내려오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한 시가 급합니다. 박기성에는 대왕께서 친히 나와 계시는데, 우리 백제쪽은 고구려군이 먼저 공격해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있거든요.”
지달은 곧 ‘삶은 쌀알’로 말을 소생시켰다.
“감사합니다. 훗날 박기성으로 오시면 대왕께 여쭈어 은혜를 갚겠습니다.”
군사는 재빨리 말잔등에 오르더니 쏜살같이 달아난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지달은 언뜻 자신의 옛 모습이 생각났다.
“아아! 나도 한 때는 저런 용감한 군사였는데……”
외칠 듯이 중얼거리고는 발을 들어 땅을 힘껏 내리쳤다.
“그렇다! 나도 한 번 더 나라를 위해 싸워 보자! 그 사이 너무도 내 재주를 썩혔구나!”
“그렇군요, 지달님! 이제 당신도 옛날의 지달님으로 소생하신 것 같애요.”
노화가 나직한 음성으로, 그러나 똑똑하게 맞장구를 쳐 준다.

박기성 가까이 갔을 때, 이미 싸움이 붙은 듯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지달과 노화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박기성을 내려다보았다.
“저런!”
지달과 노화는 똑같이 절망의 탄식을 했다. 박기성을 철통같이 에워싼 고구려군이 바야흐로 성문을 때려 부수고 밀려들려는 참이었다.
“빨리 헤법스님의 영험을 빌리세요. 빨리.”
노화가 한사코 재촉을 한다.
“아… 아니! 그 구슬이 이런 경우에도 영험을 내실까?”
“내고말고요. 우리를 구해주신 구슬인데 우리의 임금님을 안구해 주시겠어요?”
“그도 그렇긴 하군. 헛일이 될지라도 해보자.”
지달은 품속에서 잣을 끄집어 내어 힘껏 깨물었다.
“딱!”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큰 소리와 함께 지달과 노화가 있는 산마루에서 수천 수만의 불덩이가 날라 내려가 성을 에워싸고 있는 고구려군을 모조리 사살해 버렸다.
뜻밖에 일어난 이 변에 성 안의 백제군은 기이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시각을 다투던 낙성의 위험이 일시에 승리로 역전된 것이다. 군사들 뿐만 아니라, 가슴 조이던 임금도 기이한 감을 금할 수 없었다.
“정녕 상제의 도움이신가 보옵니다.”
금방까지 벌벌 떨고 있던 신하들이 엎드려 아뢴다.
“아니다. 불덩어리가 날아온 저 산으로 군사를 보내 봐라. 아무래도 알 도리가 생길 것이다.”
총명한 임금은 군사를 시켜 산 속을 찾아보게 했다. 조금 있으려니 군사들이 지달과 노화를 데리고 왔다.
“나를 구해준 것이 너희들의 힘이냐? 속히 말하여 나를 기쁘게 해 다오.”
“네, 그러하옵니다.”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한 지달은 사실대로 아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과 노화가 여태까지 겪은 고난의 역정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지달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임금은 측은한 얼굴로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너무나 비참했던 것이다.

임금은 곧 지달과 노화를 편히 쉬게 한 후, 이튿날에는 높은 벼슬과 후한 상을 내렸다. 그리고 왕족의 대열에 다시 오르게 했다. 이렇게 하여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내고 자신들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지달과 노화는 행복하게 일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지달과 노화는 행복한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혜법스님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았으며 고국 백제와 백제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부부로 평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얘기는 백제 전역에 퍼져 백제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보과부인의 내조와 사랑
백제의 제9대 임금인 책계왕 때의 일이다.
“비(妃)”
“네에ㅡ.”
새 왕비의 대답하는 목소리는 모기 소리만큼이나 가늘어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였다. 환한 불빛에 비친 새 왕비의 얼굴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가누지 못하는 듯 기종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비!”
젊은 책계왕은 먼 곳에서 새로 맞아 들인 젊은 왕비를 다시 한 번 불렀다.
허위대가 크고 뚝심이 있어 보이는 책계왕은 성품도 강직할 뿐만 아니라 의지 또한 굳세어 마땅치 못한 일이나 맺고 끊는 것이 분명치 못할 때는 그 일을 그대로 넘기지 않는 성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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