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국회의원과 공직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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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가는 국회의원과 공직에 대한 성찰
  • 김창호 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20.04.0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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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5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아 여야 정치권의 자천타천의 출마의 변이 무성하다. 해당 선거구민이 아닌데도 후보자들의 메시지는 자꾸 밀려든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그 위선과 해악은 거의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지만 기라성을 방불케 하는 인사들의 대거 등장에는 과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아이디어나 공약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남발되는 현란한 언변에 아주 행복한 나라, 지상천국, 유토피아가 눈앞에 다다른 느낌이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 역시 빛나는 현직의 하나이고 가문의 대단한 영광일 것이다. 오죽하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항설까지 횡행하겠는가. 옛 선인들의 지적처럼 누가 백로이고 누가 까마귀인지를 잘 알 수 없다고 겸손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어떤 인물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 소위 명문이라는 좋은 학교 나오고, 경력 관리가 성공적이고, 리더십이 출중하고, 인품이나 행실이 모범적인 붓대와 먹물들이 하게 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인간적, 정치적, 지적 수준을 차치하고서 어쨌든 입신양명하여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기회를 잡은 뛰어난 인재들에게 평범한 우리는 뜨거운 격려라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드러나는 온갖 실망스러운 장면들은 선거 때마다 재탕, 삼탕을 넘어 계속 반복된다. 결국 유권자들의 기립 박수와 국민들의 환호와 응원 속에서 자랑스러운 국회의원이 되기보다는 상처뿐인 영광이거나 난형난제처럼 치졸한 난타전을 거쳐 겨우 당선된다. 대통령이나 정당의 과잉보호나 다수의 착각 덕분에 대망의 선량의 자리에 오른다. 이런 경우 우리 국민들은 아주 훌륭한 동량지재를 만날 복이 아예 없거나, 국민들이 많은 죄를 지은 업보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자포자기라도 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교산 허균(1569~1618)이 모은 앤솔로지(Anthology-명문 선집)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는 ‘한정록’에 보이는 구절이다. ‘…곧게 살면서도 세속을 끊지 않은 사람일세. 천자가 그를 신하로 할 수 없고 제후가 그를 벗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 밖의 것은 나도 알 수가 없다네.’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인물들의 사람됨과 처세를 숙고하면서 이런 정도의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든다.

지난 박근혜정부의 여지없는 붕괴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공천의 실패에 따른 총선에서의 패배가 아니었다고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권력의 단맛을 즐긴 함량미달의 해바라기 출세주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고물 창고에서 꺼낸 폐물들을 무슨 보물처럼 우대한 결과는 국정의 실패로 이어졌고 참담해진 국민들은 결국 대대적으로 촛불을 들었다. 거울과 같은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정부 역시 겸허하게 성찰해야 할 대목이며 그동안 정실에 따른 실패한 인사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자유로운 처지가 아니다. 레임 덕이 예상되는 집권 후반기의 어려운 위기라지만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하는 시기다. 예나 지금이나 당파는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국론은 심하게 분열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우려되는 현실이다.

조선의 중흥을 기획 실천했다는 개혁군주 정조(1752~1800)는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지어 잠 잘 때도 잊지 않고 스스로를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침실 이름을 탕탕평평실로 명명했다고 한다. 정권을 장악한 노론 4대신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가까스로 용상에 오른 영조(1694~1776)는 당파의 화합을 상징하는 탕평채라는 음식을 선보이고 즐겼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는 삼권분립의 한 축을 감당한다는 국회의원 공천 또한 대통령제 하에서 일종의 사천이나 논공행상에 해당되는 엽관제의 우산 아래에 있고,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의 영입인재나 창업공신들에게 보상이나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 확립된 관례이고 다반사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소위 코드 인사, 자파만을 중용하는 근시안을 도무지 벗어나지 못한다. 여야를 떠나 정치인들은 선거라는 일대 회전을 맞아 심기일전, 환골탈태, 혁신통합 등의 구호와 명분을 거창하게 내세웠지만 후안흑심, 양두구육, 빛 좋은 개살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너무 가혹한 평가가 될 것인가.

병자호란의 국난을 온몸으로 헤쳐나간 김상헌(1570~1652) 선생은 “앞에서 현자를 막아 나라를 그르쳐 외적이 이르게 하고 가시덤불로 뒤덮이게 하였거니와, 뒤에서 부추기는 상소를 올려 총애를 구하고 사악한 말을 행하고 궁궐을 폐하게 한 간신의 죄는, 어찌 죽이는 것만으로 말 수가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일한다는 조정의 장관을 비롯한 문무백관들이나 국회의원이라는 요직에 진출하는 공복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과거 왕조 시대에는 적재적소는커녕 자질과 인품이 형편없는 동네 건달과 비슷한 자들이 줄을 잘 잡아 출세를 해서 사대부의 자리에 오른 자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를 질타하는 경구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정약용(1762~1836) 선생이 공직자들의 맑은 자세를 강조했던 ‘목민심서’는 압권이다.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와 다양한 저서들에서 보이는 통분한 말씀들의 일부를 전한다. “누구누구는 이익을 추구하여 부끄러운 줄 모르는데도 권세와 명예를 거머쥐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요, 누구누구는 욕심 없이 담담하여 자취를 멀리 숨겨버렸으니, 끝내 묻혀버리고 출세하지 못하니 애석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들만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많이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정치를 장악했던 이웃 중국의 경우도 이런저런 사정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명말 청초의 선각자 이탁오(1527~1602) 선생도 신랄했다. “지금의 주자학자들은 죽일 놈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도덕을 입에 담고 있으나 마음은 고관(高官)에 있고 뜻은 거부(巨富)에 있다. 겉으로는 도학을 한다고 하나 속으로는 부귀를 일삼으며 행동은 개, 돼지와 같다.”


김창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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