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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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47
  • 한지윤
  • 승인 2020.06.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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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의 힘을 빌리면서도 대방을 돕는 폭도 되니, 장인 나라에서 생색도 내게 된다. 일석이조의 득을 얻는 셈이다. 싫을 리가 없었다. 왕은 날이 밝음을 기다리지도 않고, 군사를 움직이라는 명을 내렸다. 대방을 치는 고구려군의 뒤를 쫓아 고구려를 치라고 명했다.
“대왕마마께오선 진정 명군이로소이다.”
왕비 보과부인은 왕의 처사를 극구 칭송했다.
자기의 뜻이 들어맞은 때문이었다.
고구려가 쳐들어가는 친정 나라 대방으로, 구원병을 보내는 일을, 백제를 위하는 일인 양 교묘한 방법으로 왕의 마음을 움직여, 대방을 도우러 군사를 보내게 된 것이 기뻐서였다. 둘러치나 메치나 결과는 같지만, 대방을 돕고자 구원병을 보내자고 하면, 백제의 신하들이 들고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었다. 신하들만이 아니라, 왕 또한 왕비의 마음을 의심할 것임에 틀림없었다.
고구려와 손을 잡지 못하게 한 것까지 의심을 받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백제를 위해, 출병을 해야 된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보과부인은 친정아버지고, 대방국 왕의 밀명대로, 백제 군사를 대방국 원병으로 보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고구려군은 백제군의 원병 때문에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낙랑 공주가 고구려의 왕자인 호동 왕자를 좋아한 나머지, 낙랑의 신기인 자명고와 자명각을 찢고, 부왕인 최리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보과부인이었다.
보과부인은 한족으로서의 앙칼짐을 또렷하게 나타내기는 했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의 크나큰 원수가 되고 말았다.
대방과의 싸움을 끝낸 고구려는 어느 나라보다도 백제를 치고자 이를 악물고 별렀다.
백제로서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백제의 힘이 커졌다고 하더라고, 고구려를 당해 낼 것 같지는 않게 여겨졌다.
백제왕은 고구려가 침공해 올 한강가에 성을 쌓았다.
아차성이었다. 아차성만 쌓아 올린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있었던 성으로 허물어져 가는 사성도 수축했다.
고구려는 손실된 병력을 보충하지 못했는지, 몇 해가 지나도록 백제를 쳐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랴. 믿거라 여기던 한족이 맥인(貊人)을 앞장 세우고 백제를 쳐들어 올 줄이야.
이 또한 왕비 보과부인이 한족과 내통을 하고 불러들인 싸움인지는 사기에 밝혀져 있지 않으므로 모르는 일이지만 유감된 사실임엔 틀림없다.
대방을 도와 고구려와 싸운 일이 있어, 한족의 침공은 없으리라 믿고 있던 책계왕은 크게 노해서 군사를 이끌고 친히 싸움터에 나섰다.
괘씸하게 여기는 한족을 쳐부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이었다. 군사들 앞에 나서서 싸우던 책계왕은 날아오는 화살을 맞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애석하고 원통한 일이었다.
책계왕은 임금이 된 뒤 13년 만에 그 자리를 맏아들에게 넘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책계왕의 맏아들은 백제 제10대 임금 분서왕이다.
분서왕은 보과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그러나 분서왕은 한족을 싫어했다.
어머니 보과부인이 한족이지만 한족을 미워했다.
한족의 화살에 부왕인 책계왕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음을 분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왕은 임금이 되면서부터 어떻게든 부왕의 원수를 갚아 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분서왕은 군사의 힘을 기르기에 힘을 기울였다.
젊은 장정은 모두 군사로 뽑으려 했고, 뽑은 군사들에겐 눈코 뜰새없이 군사 훈련을 시켰다.
활 쏘는 법을 가르치면서 그 솜씨를 익히게 했고 칼 쓰는 법을 가르치면서 그 솜씨를 길렀으며 창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 솜씨를 다듬게 했다.
말 달리는 법과 말 부릴 줄 아는 조종술을 터득케 했으며 적의 침공을 받아 성 안에서 싸울 때의 성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면서 싸우는 법을 가르쳤다.
들에서 싸우게 될 때의 백병전(白兵戰)이며 산과 골짜기에서 싸울 때의 기습작전과 기습을 당할 때의 이를 피하는 방법 등 싸움에 필요한 모든 방법과 재능을 연마시켰다.
고구려보다도 한족의 원수를 갚겠다는 적개심 때문에서였다.
왕은 임금이 된 뒤 7년 동안 이같이 군사 훈련을 시켰으니, 백제 군사의 힘이 강해졌을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왕은 군사를 일으켜 한족의 세력이 가장 크고 뿌리 박혀 있는 낙랑 정벌의 길에 올랐다.
7년 동안 쌓고 닦고 키우고 기른 힘이었다.
분서왕이 친히 앞장서 나선 백제의 친정군이었다.
왕은 낙랑의 서현을 단숨에 물리쳐 버리고 그 영토를 차지해 고구려보다 먼저 낙랑 서현을 차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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