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내기 
상태바
버텨내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7.23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 시작이다. 엄마가 되는 것은 고통이며 신비이다. 육아는 전쟁이다. 육아에는 휴가가 없다. 어떻게 하면 긴 육아의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H는 결혼과 동시에 동남아시아로 이민을 갔다. 초기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취직한 남편과 즐겁게 생활했으나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양육 스트레스가 급증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만이 유일한 세상이었다. 딸이 울면 젖을 물리고, 똥을 싸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시키는 일상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젖소가 된 것 같아 우울감이 밀려왔고, 아이가 울어도 안아주기 보다는 방임하고 폭력을 일삼았다. 겨우겨우 일상을 살아갈 즈음 둘째를 임신했고, 만삭일 때 남편 직장이 부도가 났다. H는 무거운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웠던 부모님을 만나자 우울감은 봄눈 녹듯 사라졌고, 둘째 아이 출산으로 온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에 매우 행복했다.

H는 두 아이를 양육하는데 한국보다 동남아시아가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입국한 지 한 달 만에 동남아시아로 떠났고, 그곳에서의 육아가 다시 시작됐다. 독박육아에 지쳐 남편이 원망스럽고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좌절감으로 자신도 모르게 큰 딸에게 화를 냈다. 겨우 잠든 큰딸을 보면 죄책감이 밀려와 화를 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딸에게 화를 내는 일상이 반복됐다. H는 외동딸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 많이 외로웠다. 그래서 큰딸에게 자매를 선물해 주고 싶어서 둘째를 낳았다. 자신의 어린 시절은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 부모님은 주말에도 바빴다. 친구들은 엄마아빠랑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데 자신은 한 번도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를 끊어버렸다. 이런 패턴은 타국에서도 비슷했다. 집 주변에는 사업자나 주재원들 가족이 많았다. 사람이 그리워서 주변 모임에 몇 번 참석했지만 학력, 직업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열등감을 느껴 모임에 참석을 중단했다.
 
소아과 의사이며 정신분석가인 위니캇은, 유아는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어머니에게서 지지받는 삶의 순간에 대해 말한다. 홀로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경험이 매우 필요하다. H는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자 언제나 아이와 함께 있어야 했다. 혼자 있는 것이 힘든 사람은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 육아의 시간을 견디기 매우 힘들다. 아이와 함께 있기 위해서 가끔 아이와 떨어진 시간이 필요하다.

나 또한 결혼 후 주말 부부로 서울과 홍성을 오갔다.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서울 생활을 마무리하고 홍성으로 내려왔다. 출산 후 육아의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했다. 나의 삶의 에너지를 두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사랑과 함께 부정적인 정서도 아이에게 쏟아 붓게 됐다. 

남녀가 결혼하면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할 때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타국에서 결혼이민 여성으로 사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언어 소통의 한계와 문화 차이로 양육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할 때 더 큰 고립감과 우울감을 느낀다. H는 낯선 곳에서 엄마로, 아내로 살아남기 위해 버텨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 아이에게 화를 내므로 아이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말았다.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는 마음의 대상항상성, 마음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어느 정도의 외로움을 견디어 낼 수 있다. 홀로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기 위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지지가 필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지만, 그리운 사람들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있다. 당신을 버티게 해주는 그리운 사람을 지금 잠깐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홍성천, 폭우로 인해 4년만에 범람
  • 삼계탕 드시고 건강한 여름 나세요
  • 버텨내기 
  • 내포신도시 ‘별도특례시’ 주장?
  • 홍성군 ‘시 승격’ 요원하다 시작부터 ‘무리수?’ 목소리
  • 몸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