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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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1
  • 한지윤
  • 승인 2020.10.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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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나루성의 비극

개로왕이 죽은 뒤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백제의 제22대 임금 문주왕(文周王)이다. 앞서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칠 때 문주왕은 태자의 신분으로 신라에 가서 1만 명의 구원병을 얻어 가지고 왔으나 그 때는 싸움이 끝나고 부왕 개로왕도 이미 피살된 후였다.
나라의 도읍지가 짓밟히고 일국의 임금마저 잡혀죽었다는 치욕은 백제상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문주왕은 그해(475년) 10월 지체없이 백제의 도읍을 곰나루성(熊津)으로 옮겼다.
백제는 전에 없는 일대 혼란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개로왕의 죽음은 백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문주왕은 좌평 해구(解仇)에게 나라의 병마지사를 일임하고 하루속히 강한 군대를 기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야심만만한 해구는 병원을 틀어쥐자 왕의 명령보다 우선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급급했고, 마침내는 엉뚱한 꿈까지 꾸게 되었다. 백제의 혼란한 국면은 해구의 야심을 실현하는데 방편한 조건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근간 좌평 해구는 병원을 믿고 왕명을 따르지 않고 사사로이 무사를 기른다고 하니 그의 움직임이 수상하오.”
“좌평 해구는 본래 어질지 못한 사람인데 이제 병권을 마구 흔드니 일찌감치 처치하지 않으면 후환이 막심할 줄 아오.”
충직한 신하들인 좌평 진로(眞老)와 덕솔(벼슬이름) 진남(眞男)이 어느날 조용한 기회에 왕에게 아뢰었다.

“과인도 해좌평의 수상한 움직임을 벌써 눈치챘으나 그는 병권을 독단하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어 걱정하고 있을 뿐이오.”
왕의 권력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신하였다. 왕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잔뜩 서려 있었다.
“신에게 한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좌평 진로가 한동안이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하였다.
“무슨 계책이오?”
“이제 바로 가을철이 괴었으니 대왕께서 기회를 보아 가면서 사냥을 나가신다 하고 날랜 무사들로 하여금 해구의 집을 급습케 하면 가히 그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계책입니다.”
덕솔 진남도 진로의 계책에 동조하였다. 이리하여 왕은 적당한 기회에 사냥하러 가는 척 하면서 해구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해구의 집에서도 왕을 없애 버릴 음모가 익어가고 있었다.
“금상은 어질기는 하지만 결단성이 없어서 이 험악한 정세를 수습할 수 없으니 주공께서는 더 주저하지 마십시오.”
해구의 부하장수 연신(燕信)이 상전의 비위를 맞춰가면서 속히 행동할 것을 재촉하였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처지하면 좋겠소?”
해구의 험상한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차 있었다. 상전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된 연신은 그가 이미 생각해 둔 계책을 거리낌없이 내놓았다.
“그건 주공께서 과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인에게 계책이 있습니다. 이제 사냥철이 되었으니 왕이 사냥하러 나간 틈에 감쪽같이 해치울 수 있습니다.”
“그 큰 사냥판에서 감쪽같이 해낼 수 있겠는가?”
“있잖구요. 전날 소인이 도적 한 놈을 잡았는데 그는 삼십보 밖에서 비수를 날리어 호랑이를 잡는 신기한 재주가 있습니다. 그 자를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음……”

일은 신통하게 되었다.
저쪽에서도 왕의 사냥을 이용할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
477년 9월, 문주왕은 치밀한 준비 끝에 신하들과 무사들을 거느리고 사냥길에 오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왕과 좌평 진로, 덕솔 진남은 적이 가슴이 뛰었다.
임금 일행은 성을 빠져나와 산 속으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이제 막 길을 돌아 해구의 집으로 돌아설 때였다. 어디선가 난에없는 단도 한 자루가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더니 왕의 가슴팍에 깊이 박혔다.
“으윽!”
왕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말에서 굴러 떨어지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다. 이리하여 문주왕은 왕위에 오른 지 겨우 3년 만에 자객의 손에 죽고 말았다.
신하들과 무사들은 너무도 놀라 잠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누군가 갑자기 외쳤다.
“고구려의 첩자다. 어서 잡아라!”
아무것도 모르는 무사들은 고구려의 첩자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진로와 진남은 이것이 해구의 작간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들도 따라서 “고구려의 첩자”라고 소리치면서 군졸들을 풀어 숲속을 샅샅이 뒤지게 하였다.
군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도 ‘첩자’는 끝내 잡아내지 못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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