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2
상태바
백마강에는 낙화암 -62
  • 한지윤
  • 승인 2020.10.21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도 ‘첩자’는 끝내 잡아내지 못했다.
“주공, 감쪽같이 해치웠습니다. 모두다 고구려의 첩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연신은 그길로 해구를 찾아가 숨이 턱에 닿아서 아뢰었다.
그러나 해구는 덤덤히 앉아서 아무 말도 없었다.
“주공, 어서 대궐에 들어가 보위에 오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직 일러. 우선 태자를 세우고 기회를 기다려야 하지.”
“네? 그러다가 혹시 낭패하면 어쩌시렵니까?”
“걱정할 것 없어. 열 살짜리 어린애가 임금 구실을 할 턱이 있는가? 그리고 태자의 기상을 보니 오래 살 것 같지도 못하던걸!”
해구는 이렇게 말하고 그 길로 대궐로 들어갔다. 해구의 군사들은 대궐을 물샐틈없이 에워쌌고 호위병들은 대적을 만난 듯이 창과 칼을 비껴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대왕께서 고구려 첩자의 칼에 맞은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지만 나라에는 하루도 임금이 없을 수 없으니 이에 태자로 대위를 잇게 하노라.”
해구는 만조백관 앞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그 때 겨우 열세 살나는 태자를 왕위에 오르게 했으니, 그가 바로 백제 제23대 임금 삼근왕(三斤王)이었다.
“대왕이 아직 연소하시매 나라의 군사와 정사를 해좌평에게 일임해야 할 줄 아오.”
연신이 어린 임금에게 이렇게 말하자 어린 왕은 그저,
“그렇게 하오.”
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해구는 이때부터 실질상 백제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나이 어린 임금은 언제나 해구의 말에 “그렇게 하오!”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 다른 일이 없었다. 그는 임금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진로, 진남 등 충직한 신하들은 더 참을 수 없었다. 역신을 하루 속히 처단하지 않는 한 백제가 망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진로와 진남은 늘 해구와 연신을 없애버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구와 연신은 군사를 사열하기 위해 대두성(大豆城)으로 나갔다. 진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왕을 찾아 급히 아뢰었다.
“대두성 군사들이 모반한다는 급보가 들어왔으니 곧 덕솔 진남으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토평하게 하오.”
“그렇게 하오.”
어린 임금은 역시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왕의 허락을 받은 진로는 곧 진남에게 철기 2천을 주어 대두성을 급습하게 했다. 그러나 무예가 출중한 해구와 연신은 단 5백기를 거느리고 진남의 군사들을 여러 번 보기 좋게 무찔렀다. 마음이 급하기만 한 진로는 친히 철기 5백을 거느리고 해구의 뒤를 들이쳤다.
“반적 해구는 빨리 항복하라!”
“문주왕을 사살한 해구와 연신의 목을 베어라!”
진로와 진남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앞뒤에서 들이치자 해구와 연신의 군사들은 드디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문즉 해구가 탄 말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해구가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반적은 내 칼을 받으라!”
진로가 말을 몰아 달려오더니 단칼에 해구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연신은 어느새 말을 몰아 그 길로 고구려를 향해 질주해 버렸다.
이리하여 진로와 진남은 왕위를 노리던 역신 해구를 처단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불쌍하게도 그 이듬해 겨울, 시름시름 앓던 삼근왕이 갑자기 죽었다. 왕위에 오른지 2년 만에 죽은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백제의 형편은 날로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동성왕의 죽음과 간신


해구와 연신의 반란을 토평한 후 삼근왕이 급사하자 왕에게 후사가 없었으므로 신하들은 문주왕의 조카 모대(牟大)로 왕위를 잇게 하니 그가 백제의 제24대 임금 동성왕(東城王)이었다.
동성왕은 어려서부터 용력과 담력이 과인하여 왕족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한 모대였던지라 그가 왕위에 오르자 그간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 삐뚤어진 정사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다. 안으로는 부역과 부세를 경감하여 백성들의 생계를 안정시키면서 나라의 힘을 기르기에 주력하였고, 밖으로는 멀리 제(齊)나라와 손을 잡고 가까이로는 신라와 화친하는 것으로 고구려에 대처하면서 극구 싸움을 피면하는 등 그의 시책은 나라 사람들의 환심을 크게 샀다.
동성왕의 적절한 시책으로 어지럽던 백제는 차츰 바로잡히기 시작하였다.
“금상은 실로 현명한 임금이야!”
“아무렴. 백제의 중흥을 이룩할 분이신데 말할 것 있나!”
백제상하는 동성왕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그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왕은 차츰 찬양의 목소리에 도취되기 시작했다.
‘아무렴, 내가 아니었던들 백제의 오늘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나도 이젠 임금답게 살아봐야겠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