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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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3
  • 한지윤
  • 승인 2020.10.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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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10년간 권력의 정상에서 만민을 호령하던 동성왕은 마침내 사치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우선 왜소한 궁궐이 마음에 걸렸다. 애초 문주왕이 고구려의 등쌀에 못 이겨 곰나우성으로 도읍을 옮긴 뒤 급급히 지은 궁궐이었던지라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궁궐이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나라의 체면이 설 것인가!’
동성왕은 마침내 전국의 힘을 기울여 궁궐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워낙 큰 역사였던지라 전국 각지에서 뽑혀온 인부들은 수 만명에 달했고, 공사기일만도 2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마침내 백성들의 원성은 터지고 신하들의 간언은 빗발치듯하였다.
병관좌평 진로는 보다못해 왕에게 직언하였다.
“대왕께서 보위에 오른 후 백성들의 생계가 안정되고 나라의 중흥이 내다보이더니 이제 와서 이렇게 큰 역사를 벌렸으니 안될 말이요. 되도록 간소하게 하고 하루속히 역사를 끝내야 하오. 백성들의 원성이 높소.”
그러나 왕은 진로의 말에 귀를 기울일 대신 발칵 성을 내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왕궁을 굳게 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이 나라 사직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요. 경들은 더 말하지 마오!”
이 때부터 동성왕은 신하들의 말을 귀에 담아 듣지 않았으며 애당초 말도 못하게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동성왕 15년에 왕은 신라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고 신라 여성을 왕비로 맞아들이더니 그에게 반하여 정사는 염두에도 두지 않고 놀이에만 정신이 팔렸다.
몇 해 후 왕은 또다시 전국 각지에서 인부들을 뽑아 궁궐 동쪽이 산 밑에 임류각(臨流閣)이라는 화려한 전각을 짓기로 작정하였다. 역시 ‘나라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붙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놀이터였다.

신하들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또 입을 모아 간청하였다.
“지금 밖으로는 고구려가 늘 이 나라를 넘보고 있으며, 신라도 장차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고 안으로는 백성들이 지치고 국고가 말랐는데 또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요.”
“대왕께선 마땅히 선왕의 유업을 이어 밖으로는 잃은 땅을 되찾고, 안으로는 백성들을 살피시어 나라의 터전을 굳게 다져야 하겠으나 이렇게 큰 역사만 일으키시니 신들은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소.”
이 때 진로는 이미 죽고 새로 병관좌평이 된 연돌(燕突) 등이 왕에게 임류각 역사를 그만두라고 혀가 닳도록 간청하였다. 그러나 왕은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과인의 나라 체면을 세우려고 전각 하나 짓자는데 무슨 말들이 그리 많은가? 경들은 과인을 어떻게 보는가? 그런 말을 하겠거든 다시 과인의 눈에 보이지도 말라!”
동성왕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임류각을 짓게 하였으며, 신하들의 간청하는 말을 듣기 싫어 모든 궁문을 닫아걸고 신하들의 출입마저 거절하였다. 이리하여 신하들은 다시 입을 놀릴 수 없게 되었으며 왕은 귀머거리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백제의 사정은 점점 어렵게 되어갔다. 그러자 한동안 잠잠하던 고구려는 또다시 쳐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동성왕은 그때마다 신라에 구원병을 청해 간신히 물리쳤으나 고구려의 끊임없는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실로 힘겨운 일이었다.

기원 500년 8월, 동성왕은 고구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백제의 북부 국경선 일재에 새로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 백가를 성주로 지명하였다. 
젊은 무장인 백가는 벌써 15년 전에 좌평의 벼슬을 받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으나 워낙 잔꾀가 많아서 다른 신하들은 물론 후에는 임금까지도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터였다. 이번에 왕이 그를 가림성주로 지명한 것도 사실은 내직에서 외직으로 좌천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내막을 모를 수 없는 백가는 가슴 한가운데 불만이 가득차 있었다.
‘늙은 왕이 놀이에만 눈이 어두워 나라를 망치고는 이제 나더러 죽을데로 가라고? 흥!’
백가는 부임 날짜가 다 되었는데도 병을 핑계 삼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왕은 크게 노하여 사람을 보내 왕의 말을 전하게 하였다.
“왕명을 따르는 것은 자고로부터 신하의 본분이라 하겠으나 백좌평은 병을 핑계 삼아 오늘 이 때까지도 도임하지 않으니 괘씸하기 짝이 없도다. 이제 당장 도임하지 않으면 참형에 처하리라!”
왕의 명령을 받은 백가는 가슴에서 얼음장이 깨지는 듯 철렁하였다.
“신이 몸이 불편하여 며칠 지체하였으나 오늘 당장 도임한다고 대왕께 전해 주오.”
백가는 이런 뜻을 왕에게 전한 다음 곧 떠날 차지를 하였다.
‘내가 미련했지, 하마터면 속절없이 죽을 뻔했구나!’
백가는 가림성으로 가게 된 군사들을 황급히 수습해 가지고 그날 정오 도성을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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