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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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사라졌다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11.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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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멘트로 유명한 어느 아나운서의 입버릇처럼, 실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홍성읍과 홍북읍에 있던 두 개의 극장 중에서 홍성 버스터미널 위에 있던 ‘CGV 극장’이 사라진 것이다. 

극장 건물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CGV측이 지난 10월 정리한 전국의 7개 극장 중에 홍성이 포함돼 있던 것인데, 이 회사는 앞으로도 3년 내에 직영점 30%를 더 정리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방침이 그렇다면, 이 극장이 홍성에서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는 것은 코로나 상황이 다소 나아지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CGV는 제일제당 그룹의 앞 이니셜(C)과 홍콩 골든하베스트(G), 그리고 호주의 빌리지로드쇼(V)의 합작으로 만든 씨제이골든빌리지(주)의 약자다.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과 함께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주축에 있는 회사로 대형 멀티플렉스의 개념을 도입해 한국영화산업의 부흥을 꾀한 곳이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고도의 협업 시스템이 존재한다. 투자배급사를 섭외하고 유능한 감독과 배우, 좋은 작품을 골라내어 제작한 후 극장을 통해 상영(배급)하는 절차를 거친다. 극장상영이 끝난 영화는 케이블 티비·IPTV, 인터넷·VOD 등으로 장시간 관객을 찾아가는데 이 과정을 통해 한 편의 영화가 다양한 분야에서 고도의 부가가치를 ‘한동안’ 유발한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영화산업구조가 수직계열화되고, 배급자가 제작과 유통을 도맡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한동안 유지하던 고도의 부가가치체계가 혼란해졌다. 거대 컨텐츠를 소유한 이른바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각종 드라마나 영화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체로의 쏠림 현상도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처럼 스트리밍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제작과 유통망을 확보하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휴대폰과 가정으로 파고드는 사이,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기만 하던 멀티플렉스들이 코로나를 기점으로 하나 둘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억해 보면 극장은 단순히 영화만 보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영화와 그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서로 문화로 공감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광천의 피보극장, 홍성읍 한복판에 있던 동보극장, 동원극장… 지금은 장소도 가물가물 하지만 그때 영화관 주변에서 마주치던 친구와 선후배들은 영화가 묶어주던 하나의 문화 공동체 소속이었던 것이다.

홍성의 CGV극장은, 내포신도시에 있는 메가박스와 함께 그동안 우리지역 문화공간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왔다. 극장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극장 하나 이상의 문화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하기에 이번의 일이 더욱 안타깝게 여겨진다. 큰 화면이 큰 감동을 준다고 굳게 믿는 필자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극장의 몰락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이 없을 것이다. 달콤한 팝콘 향기가 주는 설렘을 맡으며 영화에 한껏 몰입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여운을 느끼는 그 가슴 먹먹한 감정은 극장이 아니고서는 안된다.

집에서 리모콘으로 조작해서 보는 TV화면이 아무리 크다 해도, 이어폰에 연결된 휴대폰의 화면과 사운드가 아무리 짱짱하다 해도, ‘결국 사람들은 극장의 향수에 못 이겨 다시 극장으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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