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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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9
  • 한지윤
  • 승인 2020.12.0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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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으니 신은 이제 한마디만 남기고 죽으려 합니다. 
신이 시국을 관찰하건대 불원간 큰 싸움이 터질 듯합니다. 대체로 싸움이란 반드시 장소를 가려야 하옵는 바 상류에서 적을 막아 싸워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훗날 만일 다른 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면 육로에서는 침현(沈峴)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면서 험준한 곳을 지키다가 적들이 피로하기를 기다려 치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대충대충 읽는 듯 마는 듯 하더니 이마살을 찡그렸다.
“늙은 것은 할 수 없어. 죽어가면서도 잔소리로군!”
왕은 성충의 간곡한 부탁을 귀 밖으로 흘려보내고 계속 음란한 생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무정하였다. 성충이 짐작한대로 전쟁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660년 3월, 당나라 고종황제는 장군 소정방(蘇定方)의 통솔하에 13만의 대군을 파견하여 신라와 한길에서 백제를 치게 하였다. 신라왕 김춘추(金春秋)는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으로 하여금 5만 대군을 인솔하여 당군과 협동작전을 하게 하였다. 당나라 군사들은 수로로 백강을 거슬러 올라갈 계획이었고, 신라의 군사들은 육로로 탄현(炭峴, 즉 침현)을 넘어 쳐들어올 기세였다.
형세는 매우 급박하였다. 다급해진 의자왕은 부랴부랴 대신들을 모아놓고 방책을 물었다. 군신회의에서는 갑론을박으로 의견이 분분하였다.
우선 좌평 의직(義直)은 당병과의 결전을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물에 익숙하지 못한 당병이 멀리 바다를 건너왔으니 반드시 피로할 것인즉 그들이 하륙하는 틈을 타서 치면 깨뜨리기 어렵지 않을 줄 아뢰오. 당병을 깨뜨리면 신라 군사는 스스로 물러갈 것이니 싸우지 않아도 이길 줄 아오.”
그러나 달솔(達率)의 벼슬에 있는 상영(常永)은 이에 반대하여 우선 신라 군사와 결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렇지 않소. 당병은 멀리 와서 싸우기에 속전속결을 바라고 있소. 그러므로 처음에는 그 서슬을 당하기 어려우니 천험의 지세를 이용하여 굳게 지키다가 그들이 피로하고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치는 것이 가하오. 신라는 일찍 우리 군사들에게 여러 번 패하여 두려워하고 있으니 먼저 신라를 깨뜨리고 편의를 보아 당병을 치는 것이 가할 줄 아오.”
의자왕은 양편의 주장에 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말을 들었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문득 그는 멀리 귀양 보낸 흥수가 생각났다.
‘옳지, 사람을 보내 흥수에게 물어보자.’
왕은 이렇게 생각하고 얼른 고마미지에 사람을 보냈다.
이 때 흥수는 도읍지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두메산골에서 책과 화초를 동무삼아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전에 도읍지에서 좌평벼슬로 있을 적엔 날마다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나들더니 이제 벼슬을 그만두고 귀양살이까지 하게 되니 찾아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흥수가 거처하는 움막집으로 어떤 사람이 말을 몰아 질풍같이 달려왔다.
“영감, 그새 안녕하시오?”
말에서 뛰어내린 그 사람은 숨이 턱이 닿아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요! 이렇게 먼 길을…… 웬 일이시오?”
그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흥수는 그의 손목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따.
“무슨 일인지 어서 말씀하시오.”
“지금 신라와 당나라의 대군이 쳐들어오고 있소. 어떻게 막아야 할지, 상감께서 이 사람을 보내어 영감의 고견을 들어오라고 하시었소.”
“끝끝내 올 것이 왔구려.”
흥수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더니 얼른 막대가지를 집어 들고 땅바닥에 지도를 그리며 말하였다.

“이걸 보시오. 여기는 탄현이고 여기는 백강 즉 기벌포, 그리고 여기는 큰 벌판이요. 이런 벌판에서 나당대군과 싸운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요.”
“옳은 말씀이요. 그러니 어떻게 하란 말씀이시오?”
“나당군사들이 백제의 서울로 들어가자면 탄현과 백강을 지나지 않을 수 없소. 그런데 이 두 곳은 지키기 쉽고 치기 어려운 곳이므로 육로로는 탄현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고 수로로는 백강을 넘어서지 못하게 해야 하오. 그러다가 적군이 지치기를 기다려 치면 가히 이길 수 있소.”
“알겠소. 곧 상감께 전하리다.”
그 사람은 지체없이 돌아갔다.
흥수의 계책을 전해들은 의자왕은 무릎을 치면서 기뻐하였다.
“지난날 성충이 하던 말과 똑같구나. 참으로 영웅의 소견은 대체로 같도다.”
그러나 의자왕의 세 왕자들은 흥수의 소견에 반대했으며, 특히 간신배들은 흥수의 계책이 채택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흥수의 계책으로 적들을 물리치게 되면 그놈이 다시 기용되게 될 것이 아닌가?”
“아무렴, 두 말하면 잔소리지. 그러니까 그놈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해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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