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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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70
  • 한지윤
  • 승인 2020.12.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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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두 말하면 잔소리지. 그러니까 그놈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해야지!” 나라의 흥망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간신배들은 일신의 권세에 눈이 뒤집혀 천추에 용서 못 할 죄악적 책동을 하고 있었다.
다시 어전회의가 열렸다.
왕은 흥수의 계책을 내놓고 신하들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미리 입을 맞춘 간신배들은 한결같이 반대하였다.
“안될 말씀이요. 흥수가 어떤 사람이요? 대왕께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는 자가 어찌 충성된 말을 하겠소?”
“흥수는 당병으로 하여금 백강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고 신라병으로 하여금 탄현을 넘어서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은즉 이것은 실없이 시일만 허비하고 우리 군사들만 지치게 할 뿐이요.”
“차라리 당군으로 하여금 백강을 넘어서게 하고 신라병들로 하여금 탄현을 넘어서게 한 다음 냅다 치면 적군은 그물 속에 든 고기나 독안에 든 쥐와 다름없겠으니 쉽게 깨뜨릴 수 있을 것이요.”
간신배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역설하였다.
“경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오.”

어리석은 의자왕은 또 한 번 간신들의 간계에 속아 넘어갔다. 이리하여 탄현과 기벌포의 천험의 요새는 무방비상태에 놓여있게 되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기벌포에 이르러 수 십 리에 걸친 진펄에 빠져 버드나무를 베어 깔면서 간신히 행군하고 있었으나 백제군은 이것을 치지 않고 멀리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벌포의 진펄을 간신히 통과한 당군은 이제 배수진(背水陣)을 친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전진만이 살길이었다. 그들은 어느덧 백강을 건너 백제군을 무찔렀다. 좌평 의직은 백제 군사들을 지휘하여 죽기살기로 싸웠으나 막아내지 못하고 그 자신마저 이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당군은 다시 사비성을 바라보며 쳐올라왔다.
한편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 장군 김품일도 5만의 군사를 휘몰아 탄현을 무난히 지난 다음 황산벌에서 백제군을 전멸시키고 사비성을 향해 쳐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천험의 요새를 무난히 통과한 나당연합군은 무인지경을 지나듯 파죽지세로 쳐올라왔다. 백제 군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수적으로 우세한 적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제 사비성의 함락은 오직 시간문제뿐이었고 백제 사직의 멸망은 불을 보는 듯하였다.
그제야 의자왕은 땅을 치며 탄식하였다.
“과인이 어리석어 충신 성충과 흥수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온조대왕께서 세우신 백제 사직이 나의 대에 와서 망한단 말인가?”
왕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흙먼지 날리는황산벌싸움
 

의자왕이 간신들의 말을 듣고 천험의 요새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당나라 군사들은 기벌포를 무난히 넘어섰으며, 신라 군사들도 탄현을 무난히 넘어서게 되었다.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은 자군 김품일(金品日), 아우인 김흠순(金欽純)과 더불어 5만의 날랜 군사를 거느리고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마침내 황산벌로 쳐들어왔다. 이 때는 좌평의직이 백강에서 당나라 군사들을 막다가 전사한 직후였다.
“신라군이 탄현을 넘어섰소!”
“김유신의 군사가 황산벌로 쳐들어왔소!”
급보는 연달아 들어왔다.
의자왕은 탄현과 기벌포를 지키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백제군의 주력은 이미 백강에서 당군에 의해 무너지고 정세는 매우 위급하였다.
왕은 곧 명장 계백(階伯)을 불러들였다.
“과인이 불민하여 탄현과 기벌포를 지키지 않아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소. 이제 사직은 장군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요. 속히 황산벌에 나가 적군을 깨뜨려주오.”
계백 장군이 벌써 그 어떤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숭엄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고맙소, 장군! 이제 백제는 장군 한 사람밖에 믿을 사람이 없소.”
의자왕은 눈을 꿈벅거리면서 계백장군의 손을 움켜잡았다.
계백 장군은 곧 물러나와 군사들을 점검하였다. 겨우 5천명에 불과한 적은 군사였다. 아무리 날랜 군사라 하여도 5천명으로 5만명의 적군을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었다. 계백 장군의 마음은 칼로 가슴을 저미는 듯했다.
‘백제는 드디어 망하고 마는구나! 나는 오직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여 싸움터에서 깨끗이 죽을 뿐이다!’
계백 장군이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5천명의 군사로 결사대를 조직했다.
그날 저녁이었다. 계백 장군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하였다.
“장군의 안색을 보니 근심이 가득 서려 있는데 속 시원히 말씀해보세요.”
“여기 앉으시오. 그리고 얘들아, 너희들도 이리 오너라!”
계백은 부인과 자식들을 몸 가까이 불러 앉히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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