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의 청백리 ‘삼산 이태중’ 선생을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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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의 청백리 ‘삼산 이태중’ 선생을 기려
  • 윤신영 기자
  • 승인 2021.04.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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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역사관 개관 10주년 기념해
오는 12월까지 ‘작은 전시회’ 개최
개회식 리본커팅.
전시중인 이태중 선생과 이복영 선생(이태중 선생 장남)의 간찰.

홍주성역사관(소장 유대근)은 지난 24일부터 오는 12월 말까지 ‘결성에서 나고 진 청백리, 삼산 이태중’을 주제로 작은 전시회를 개최한다.

홍성군은 매년 홍성의 역사 속 인물과 유적을 주제로 작은 전시회를 개최해 지역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번 작은 전시회는 주인공은 결성 출신 청백리 삼산 이태중 선생으로 홍주성역사관 10주년을 기념해 기획했다. 작은 전시회 개회식에는 김석환 군수, 홍성군의회를 비롯한 내·외빈 20여 명이 참여했다. 특히 개회식에 이태중 선생의 직계 후손인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리에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삼산 이태중 선생의 소신있고 청렴한 삶에서 배울 것이 많다”며 “홍성군의 관심으로 삼산 선생의 전시회까지 이뤄져 고맙다”고 말했다.

김석환 군수는 “공직사회에 있어 삼산 이태중 선생의 청백리 모습은 배워야 점이 많다”며 “이번 전시회뿐만이 아니라 관내 공원에 삼산 이태중 청백리 비 세우는 사업을 별도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작은 전시회에는 삼산 이태중 선생과 관계 인물들의 간찰(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주고받는 글. 서찰, 서간이라고도 한다.)이 전시되고 있다.

한편 삼산 이태중 선생은 1694년(숙종 20)에 결성현 삼산고을(현 보령 천북면 신죽리)에서 태어나 1730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이후 선생은 영조의 탕평책에 소신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탄핵돼 20년간 58회에 걸쳐 영조가 내리는 벼슬을 거부하고 흑산도, 갑산, 진도 등 6차례 유배를 당했다.

하지만 1753년부터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정조(당시 세손)의 교육을 담당하는 보양관을 거쳐 호조판서까지 올랐다. 1756년 10월 고향 결성현 삼산에서 사망해 결성현 가산면 목현(현 홍성군 은하면 목현리)에 묘를 조성했다. 이후 결성현감이 목현리를 지날 때마다 선생이 계신 곳이라 해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선생은 사후 1796년(정조 20)에 청백리에 추천됐고 1834년(순조 34)에 문경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1865년에는 불천위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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