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선한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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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선한 파장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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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연결고리 속에서 안정감을 갖게 된다. 특히 연인들은 좀 더 특별하고 친밀한 관계 유지를 원한다. 이런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커플링을 한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D씨는 20대 무직여성이다. 채팅 어플을 통해서 만난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매주 기차표를 예약한다. 남친과 1박 2일 동안 맛집에서 음식을 먹고, 인형 뽑기도 하고, 서로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특히 남친의 자상함과 넓은 품은 답답했던 명치가 확 뚫리는 느낌을 안겨줘 결혼을 꿈꾸게 한다. 어느 날 남친은 커플링 반지를 D씨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예상하지 못한 선물에 당황했지만 남친에게 환한 미소와 진한 키스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커플링 반지를 볼 때마다 “나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주문을 반복적으로 읊는다.

D씨는 어린 시절, 술을 좋아하는 어머니로부터 잦은 폭력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경험하면서 잦은 결석과 지각을 했고, 중학교 때 채팅 어플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 성관계를 통해 용돈과 잠잘 곳, 음식 등을 제공받았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술과 담배를 자연스럽게 했고, 일탈 행동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나타난 소아 당뇨와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는 학교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했고, 학교를 자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집에서 생활하던 중 가족들의 방임과 잦은 폭력에 가출을 시도했지만 자신이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Ⅳ-TR, 2000년)에서는 화병(hwa-byung, 火病)을 문화관련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으로 분류한다. 화병(火病)은 분노나 답답함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견디다가 그 화가 비틀어져서 내면적 질환으로 발전한 것이다. 곧 화를 낼 수도, 풀 수도 없는 상황에서 참을 수 없는 화를 참아야 하는 고통은 그 자체로 괴로움을 줄 뿐만 아니라 화의 통제에 대한 능력을 약화시켜 격한 흥분 상태를 조장하는 감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증상에는 우울증, 불면증, 피로, 공황, 곧 죽을 것 같은 공포, 소화불량, 호흡곤란, 심계항진, 상복부에 덩어리가 있는 느낌 등이 포함된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1957)은 생애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 경험은 유아에게 정서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고, 데이비드 월린(David J. Wallin, 2010)은 대상에 대한 정신적 표상으로 자리매김해 최초의 관계 패턴으로 형성된다고 했다. 따라서 비일관적인 양육을 경험한 사람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며, 타인에게 버림받거나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타인에게 버림받거나 대상을 상실할 것 같은 두려움은 유기불안이라는 개념으로 정의되는데, 유기불안은 성인 초기에 있어 연인과의 관계가 가장 친밀하고 밀착된 관계라는 것을 고려할 때 더욱 크게 경험될 수 있다고 했다.

D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비일관적인 양육과 친구들로부터의 왕따로 만성적인 불안과 소외감을 경험하면서 감정을 억압한 채 살아왔다. 매일매일 날아오는 폭력의 파편으로 몸에는 신체질환이 생겼고, 마음에는 화병이 생겼다. 살고 싶어서 선택한 채팅 어플은 쉼터와 배고픔을 달래주는 통로가 됐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도 거부하는 자신에게 몇 시간이지만 잠잘 곳과 먹을 것,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주어진 것이다. 오랫동안 외로움과 결핍으로 허기진 D씨에게 단비가 돼 준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현재 만나는 남친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반겨주고, 포용해주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더욱 버림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상담을 통해 D씨는 스마트폰에 있던 많은 어플들을 삭제했다. 그리고 자격증 취득과 취업을 위한 강한 욕구를 호소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과 남친이 만났을 때 사용하는 많은 데이트 비용을 조금이나마 분담하고 싶기 때문이다. D씨는 커플링 반지에 담긴 의미처럼 남친과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그런 욕구가 D씨를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일어설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다. 설령, 훗날 남친과 이별을 경험할지라도 D씨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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