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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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를 살리고 유학을 현양하는 길〈1〉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2.05.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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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은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사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사람인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그런데 사람다움의 모습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여기서는 이렇게 행위하는 것이 사람다운 것인데, 다른 곳에서 그렇게 행위하면 사람답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용기’에 대해 보면, 어느 때는 ‘만용’을 부리는 것이 용기가 되나 또 어느 때는 ‘비겁’한 것이 용기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보면 사람다움은 개인의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시세에 적의하게 처신할 때에만 성립할 수 있음을 알겠다.

실제로 사람이 되려면 고등 동물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만 사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중이 되고자 해도 중이 되려는 개인의 의지 외에 그를 중으로 만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중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맹자 같은 이도 성선(性善)을 말한 뒤에 존양(存養)과 성찰(省察) 외에 왕도(王道) 정치를 말했고, 순자도 성악(性惡)을 만한 다음에 그를 교정할 예악(禮樂)과 권학(勸學)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다움이 때와 장소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면 유학도 변화된 시대 환경에 맞게 새롭게 해석되어 행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에 살면서 옛것만을 고집한다면 거추장스럽기도 하겠지만 대중에게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개인보다 사회가 중시되었다. 지금에 비해 사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보다 모여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모여 사는 사회를 해치는 것은 큰 죄악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가장 큰 죄악이 불효(不孝) 부제(不悌)였던 것은 이에 기인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이와 다르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산 기술이 발달해 물자가 풍부하고, 통신·교통수단이 발달해 어디는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며, 의학이 발달해 생명 연장을 꿈꾸는 세상이 됐다. 그리고 분업의 발달은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줘, 특별한 도움이 없어도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아산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현충사(顯忠祠)가 있다. 그 이름을 왜 ‘현충(顯忠)’이라 지었을까? 예전에는 개인에 대해 국가의 안위를 우선 걱정했다. 그래서 충(忠)을 현양하는 편액이 걸린 것이다. 만일 오늘날에 현충사를 짓는다면 ‘현충’이라는 말보다 ‘기억한다’(memorial hall)는 뜻을 지닌 이름의 편액이 사용될 것이다.

‘충절(忠節)’이라는 말도 이와 같다. 과거에는 사회와 국가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충(忠)’을 절개로 하는 도덕이 매우 중시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헌법에도 명시돼 있지만, 개인의 자유의 실현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공정한 룰을 뜻하는 공정과 정의가 사회의 미덕으로 떠오른다. 과거 자신을 ‘민주’와 ‘정의’로 포장한 군부 세력이 정치를 농단한 적이 있다. 그 당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런 면을 고려하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정한 룰의 마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사회가 된 것이다.

유학의 도덕 가운데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수신(修身)이 평천하(平天下)의 관건이라는 뜻인데,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치를 도덕에 종속시키는 이같은 ‘수직적’ 가치관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도덕과 정치를 병발적(竝發的)인 것으로 이해하는 ‘수평적’ 사고를 더 선호한다. 그것은 도덕과 정치의 뜻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 도덕의 주요 내용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개인의 자유 실현을 가치의 최우선 순위로 꼽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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