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산 저녁노을 아래서
상태바
백월산 저녁노을 아래서
  • 최윤종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0.27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주 어릴 적 나의 상상의 세계 한 모퉁이에 ‘저 백월산 넘어 에는 어떤 세상일까?’라는 궁굼함이 있었다. 태어나 자라온 집이 그 맞은편 먼 마을 마구형이었기에 마을 어귀 높은 신장로 고개에서 서편으로 바라다본 백월산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였다. 찬 바람이 제법 불어오는 계절이면 바람을 타고 신장로에서 연을 날렸다.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온 연을 하늘에 올릴 때 어떤 경우 서로 엉키기도 하고 바람을 못 이겨 빙빙 돌다가 땅에 내리박히기도 했다.

방패연, 꼬리연, 희귀하게 생긴 연들도 종종 등장하기도 했었다. 나는 고작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시린 손으로 밥풀을 으깨어 국회의원 얼굴이 그려진 달력 종이에 붙여 마름모꼴의 꼬리연 정도를 만들어 날렸었는데 동네 형들 연의 오름을 따라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도 신이 나고 흥에 겨웠던 날들을 잊지 못한다. 

초교 시절 언젠가 처음으로 백월산에 소풍을 갔다. 이른 새벽 어머니가 김밥을 자를 때 이미 꽁지는 옆에서 주워 먹었고 정갈한 김밥으로 정렬된 도시락을 가방에 넣어 등에 밀착시켰다. 보너스로 누나가 가방에 담아준 사이다는 친구들을 놀래켜 주기에 충분한 비장의 무기이기도 했다. 그때의 심정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손에 쥔 듯 든든하기만 했었다고나 할까? 이 설레는 도보 여정은 마구형을 지나 읍내를 가로지르는 긴 행렬이었다. 백월산에 이르러 중턱으로 보이는 어느 곳에서의 보물찾기와 레크리에이션은 소풍의 백미였다. 다시 돌아오는 행렬 속에서의 나는 여전히 정상에 올라 그 너머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컷다. 그리고는 무심코 나도 모르게 반백 년 가까운 시간이 훅 지나왔다.

어느 날 저녁 홍성지청에 근무하는 고교 동창 친구가 무뚝뚝한 법조인답지 않게 갑자기 차를 가지고 와서는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며 기대에 찬 모습으로 멋진 구경을 시켜 주겠다더니 백월산 꼭대기까지 한숨에 달리는 것이다. 그 정상까지 차가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이 놀라웠다. 그날 정상에서의 야경은 서울 빌딩 숲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듬성듬성 마을의 사람 사는 불빛이 보였지만 장관은 바로 하늘에 펼쳐있었다. 그날은 황사나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었나 보다. 어릴 적 밀대 방석을 마당에 깔고 누워서 올려다봤던 북극성,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물고기자리 등 친근한 별자리들이 그대로 있었다. 넋을 놓고 별자리를 세어보는 중 떨어지는 별똥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역시 백월산 너머에는 그저 또 다른 산과 들 그리고 옹기종기 사람 사는 세간의 집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그 이상의 세계가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종종 백월산에 오른다. 그때마다 놀랍게도 정상에 닿아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가니 항상 새로운 것들이 있었다. 계절의 변화가 있고, 함께 오른 이와의 우정이 있고, 내 속에서 새 각오와 결심의 몫이 주어지기도 했다.

백월산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사시사철 옷을 바꿔입는 산과 들도 멋지지만 매번 나를 반하게 하는 것은 똑같은 하늘일지언정 그 하늘의 빛깔이다. 때로는 구름이 수를 놓는 앙증맞음은 무감각한 나의 정서와 영적 감수성을 일깨워준다. 높푸른 하늘 그 빛깔이 석양의 때에 이르게 되면 저 멀리 안면도 바다 위로 보이는 장엄한 심포니로 펼쳐지는 저녁노을의 광경은 말로 다 형언하기 어렵다. 언젠가 토함산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동해 쪽에서의 일출이 으뜸으로 손꼽히는 만큼 이렇게 서해 쪽에서의 일몰 역시 감탄의 희열을 발산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비단 북극권에서 볼 수 있는 ‘천상의 커튼’이라 불리는 오로라만이 창조주의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광대한 하늘이 나의 작은 눈동자 속에 담기는 신비로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리라.

그런데 항상 이 신비에 잠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느 날은 드높은 하늘은커녕 한 치 앞의 시야조차 가리는 날도 있지 않은가? 황사와 미세먼지가 그 이유이다. 기상청에 절실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나처럼 호흡기 알러지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코로나19시대를 지나오면서 겹겹이 큰 아픔도 있지만 멈출 대로 멈춘 굴뚝 연기로 인해 어느 정도 청명을 되찾았던 공기와 열린 하늘이 다시 어둑해질까 우려도 된다. 
나는 이 글을 서해바다 너머의 중국 땅 어느 누군가에게도 소소히 읽혀지길 바라본다. 또한 내일의 다음 세대에게 이 세상을 물려주는 일에 무감각한 그 누군가에게도 읽혀지길 바라본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요 자녀들의 이야기임을 숨죽이며 받아들이게 되길 소원해 본다. 그 누구도 하늘을 가리는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이때 우리 각자가 책임 의식을 가지고 공해를 방지해야 한다. 

수천수만 년 동안 인류가 고민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근간 몇십 년 상간에 생존의 문제로까지 대두되기에 이르게 되었음을 누가 부인할까? 어떻게든 마스크를 쓰는 데만 관심을 갖기 보다 마스크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비롯해 생활에 편리한 것들로부터 최대한 불편하기에 동참해야 한다.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노력과 겨울철 대비 사용 연료에 대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치인들의 요구와 구호 속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것이 아닌 우리들의 살길을 스스로 열어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각자가 노력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모든 것은 할 수 없어도 어떤 것은 할 수 있기에 그 작은 노력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무한한 공기 중, 들이마시는 만큼 내 것이 되듯이 작은 노력으로 내가 보존한 만큼은 나의 성과요, 그만큼 세상에 보템이 될 것이다. 불편한 것은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행을 줄여 가는 것이다. 우리는 편리를 앞세우는 이 세상살이로부터 한걸음 물러서서 조금은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불편을 선택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백월산 너머 서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연을 날리고 꿈을 키워왔던 그때처럼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으로 서로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기를 소원한다. 인생의 중년과 황혼도 저녁의 석양만큼이나 성숙함과 열정으로 아름답게 물들기를 소원해 본다. 이 소원이 과한 욕심이라면 나는 놀부만큼이나 큰 욕심쟁이가 되고 싶다!
 

최윤종 <홍성침례교회 담임목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