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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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대해…
  • 최윤종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2.22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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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내리는 이날, 함께 눈길을 걸었던 시간을 추억하며 소중한 친구들을 조용히 떠올리게 됐다.

“옷은 새것이 좋지만 친구는 오랜 사람이 좋다”고 했다. 덕분에 빛바랜 앨범을 꺼내어 사진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SNS의 지난 스토리를 되돌려보며 친구들의 얼굴을 소환했다. 심지어는 어릴 적 초교 몇 학년 때였었는지 소풍 때 어깨동무하며 찍었던 사진부터 얼마 전 어색한 배불뚝 사장님들의 사진까지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이 차이는 있어도 당시에 서로 어울릴만한 공감대 안에서 함께 찍은 사진마다 제각각인 그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무표정으로 어색한 자태, 함박웃음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던 친구, 근심 어린 얼굴, 주인공 포스, 엑스트라 격 인물로 함께 사진을 찍었던 그 모든 이들이 사실상 모두 인생 친구다!

그때는 그때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지금이라는 시간까지 미소 짓게 할 줄을 어찌 알았으랴. 

함께 해 ‘있음 그대로’가 힘이 돼 준 고마운 친구들이 하나둘씩 인생의 지점마다 있었음이 그 무엇보다 나에게 큰 복이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들에게 어떤 친구였는가? 눈송이가 허물 벗은 선비 나무의 살결에 살포시 내려앉아 솜털 부럽지 않은 외투가 돼 주듯 고마운 이들에게 나는 어떤 친구가 돼왔을까? 마음으로 축복하며, 말로 지지해 주고, 행동으로 보탬이 되는 그런 친구가 돼 줬어야 했거늘 오히려 마음으로 시기하며, 말로 용기의 불을 끄고, 서투른 이기적 행동으로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가? 겸허한 자문을 던져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시인처럼 나에게도 이 몸부림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겨울이 춥다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봄은 봄으로, 여름은 여름으로, 가을은 가을로 제 계절의 빛깔이 있을 때 만물의 이치에 맞는 것이다. 그래서 대지도 숨을 쉬고 그에 걸맞는 세상만사가 형성되듯, 사람 간의 우정도 서로 무조건적 결합이기보다 서로를 인정하는 독립 속에서 상호 보완관계가 있고 진정한 정이 커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고인다. 따라서 진정한 우정을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하나는 서로 간의 틈새 혹은 ‘공간’(space)이 필요하다. 사람을 내 사람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이는 집착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 충동을 자꾸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한걸음 떨어져서 사랑해야 한다. 사람은 붙잡으려 하면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고 멀어지는 법이다. 오히려 충분히 인정해주고 서로 간의 틈새를 여유의 공간으로 두어 누구든 그리운 공간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 공간으로 멀어지는 관계가 될까 우려도 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는 서로의 인정이 되고, 기대가 되고, 그리움이 되고, 우정의 또 다른 산실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어줌’(self-giving)이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도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며 그처럼 성탄의 빛으로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심에 따르는 모든 이의 찬양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우리들의 사회도 존경받음이 유지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관계 속에서 ‘내어줌’이 지속돼야 한다. 이는 특정 소수의 몫이 아니다. 누구나 양심(良心) 속 마음의 호주머니 속에는 제각각의 뜨끈한 핫팩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발휘하는 것이다. 친구에게 자신의 것으로 표현되는 그 무엇을 내어줌으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뜻밖의 예기치 못했던 만남은 하늘이 주지만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몫은 인간 스스로의 몫이요 내 자신의 몫이 아니겠는가?

학창 시절 캠퍼스에서 시상을 떠올리고 혼자 감탄하며 써 내렸던 식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별이 빛나는 밤’
반짝이는 별이/까만 밤하늘을 수(繡) 놓아요/까만 밤하늘이/별을 빛내줘요/그 다정함이 말은 없지만/어깨동무한 고향 친구처럼/흐뭇하기만 합니다/별 그리고 밤….

별을 빛나게 하는 밤하늘처럼, 밤하늘을 아름답게 하는 별처럼 서로 다름이 매력이고 조화로운 결실이기에 인생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리며 우정을 쌓아가련다.

서재의 창밖으로 계속해서 흰 눈이 내린다. 이 눈이 언제 그칠지 잠시 후 일부러라도 뽀드득 뽀드득 밟고 걸으려 한다. 고마운 친구들의 기억 덕분에 행복으로 가득한 발자국으로 남겨지리라. 언젠가는 그 발자국조차 녹아내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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