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달 가족문학사’ 기념하는 가족시비 건립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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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달 가족문학사’ 기념하는 가족시비 건립 필요하다
  • 전상진 <문화그루 율(律) 대표>
  • 승인 2023.10.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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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기고 글에서 ‘홍성 문화예술인물’ 선양 또는 기념사업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먼저 문학 분야에서 김성달 가의 가족문학사를 소개하고, ‘선양 또는 기념사업의 방향은 어찌해야 할지, 어떤 것이 있을까’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후기 문학평론가 이규경은 《시가점등》 ‘내가수증연주록’에서 김성달·이옥재 부부, 부실 울산 이씨와 열 명의 자녀 등 전 가족의 가족문학사를 논하면서, “책에 수록된 규방에서 읊은 시는, 압록강 동쪽 고금에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이 가족의 놀라운 문학적 기량과 시의 경지를 평가했다. 이 집안의 문학사는 한마디로 “압록강 동쪽 우리나라 고금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 김성달 가족과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 온 곳이 바로 홍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 342번지. 이곳은 조선의 살아있는 가족문학사를 간직한 곳이다. 안동 김씨인 청주 김성달(靑洲 金盛達, 1642~1696) 가족 전체의 문학을 잉태한 곳. 이곳이 오두리이다. 오두는 자라머리. 마을 모양새가 자라머리 같다고 붙여진 오두리. 30여 년 전만 해도 바다였던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마을이 자리 잡았고, 그 마을 언덕 위쪽이 바로 김성달 가족이 살며 사랑하며 문학을 나눈 곳이다.

김성달 가족이 이곳으로 온 것은 할아버지인 수북 김광현이 배를 타고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이곳에 정착한 뒤 김성달은 연안 이씨 이옥재(李玉齋, 1643~1690)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바로 이 둘의 결합은 조선 후기 최고 명문가의 만남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의 함락으로 순절한 선원 김상용의 후손 김성달. 조선 중기 문장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월산 이정구의 후손 이옥재의 만남. 그 만남만으로도 이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김성달·이옥재 부부는 상호 믿음과 존경어린 사랑으로 평등한 부부문화를 이뤘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고, 꽃을 감상하며 시를 지었다. 부부의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탈권위적 부부상은 자녀들의 인성과 문학적 소양에 절대적인 영향을 줬다. 부부의 존경과 사랑은 아홉 자녀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평등한 자녀교육을 이뤄냈다. 성에 대한 차별도, 불평등한 교육환경도 이 집안에선 자유로웠다.

특히 시시때때로 평등한 부부 관계를 보여준 부모와 아홉 남매 등 가족과 어울려 시 짓고 풍류를 즐기며 한 점 거리낌이나 위축됨 없이 밝고 발랄하게 성장한 호연재(浩然齋) 김씨(金氏, 1681~1722)는 임진왜란 후 주자학의 논리로 사회가 재편되면서 여성억압을 우주적 진리처럼 여기던 시대, 저속하고 비열한 남성중심 가치관을 선명한 논리로 박살내며 당시의 여성들의 한숨을 통쾌하게 대변한 지식인 여성이자 곤고한 시집살이를 통해 실존적 삶의 모순을 통찰하며 이를 기록한 여성시인이다.

김호연재의 문집 《호연재유고》 등을 살펴보면, 이 집안의 자유로운 교육관을 살펴볼 수 있다. 아홉 남매는 이렇게 자유로운 고향 오두리에서 자랐고 시인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부실(첩)인 울산 이씨도 남편인 김성달 사후에 시를 짓게 되면서 이들 가족문학사에 자연스레 들어가게 된다. 이들 가족 13인이 남긴 시가 1000여 편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거기에 서녀와 친척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시 문학사를 김성달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성달 가족의 문학사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문희순 교수의 노력으로 발굴한 이 방대한 가족문학사가 빛을 보았지만, 지역에서는 아직도 김성달 가족의 문학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

문 교수가 대전 대덕 송촌동 동춘당가의 김호연재의 존재를 알아가면서 찾기 시작한 이 노력은 《안동세고》, 《부연주록》, 《우진》 등을 찾아내면서 “이 가족은 우리나라 어디를 뒤져봐도 없다”고 할 만큼 대단한 가족임을 깨닫게 된다. 그의 노력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김성달 가족의 놀라운 문학적 기량과 시의 경지를 평가하기 위해선 먼저, 김성달·이옥재 부부의 시집 《안동세고》, 아홉 자녀들의 시집인 《부연주록》, 부실 울산 이씨와 서녀의 시집 《우진》 등의 번역과 해설집과 연구서 등이 발간돼야 한다.

다음으로는 갈산면 오두리 생가지에 홍성군과 지역 문화예술계 차원에서의 선양 또는 기념사업이 이뤄져야 한다. 생가 복원은 그 형태나 구조 등을 알 길이 없기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 생가 표지석을 건립하면서, 반드시 가족시비 건립이 필요하다. 시비는 김성달·이옥재 부부 시비와 아홉 자녀 시비, 김호연재 시비 등이 세워져야 한다. 또 김성달 가족 전체의 문화공간이자 문학 창작공간인 정자 ‘반구헌’의 건립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홍성 문학길’ 조성도 고려해 볼만하다. 장곡의 매호 진화, 구항의 손곡 이달과 약천 남구만, 홍북의 매죽헌 성삼문, 갈산의 김성달 가, 결성의 만해 한용운 등을 연결하는 고리로 장곡 홍성문학관, 광천 노동문학관, 결성 만해한용운선생생가지 등을 잇는 ‘홍성 문학길’ 관광코스 개발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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