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생지옥 …아비규환이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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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생지옥 …아비규환이 이런 것?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2.11.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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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 산 개와 죽은 개 뒤엉킨 집단 사육 현장

▲ 도로가에 유기된 강아지 사체들

지난 19일, 길가에 묶여 있는 개들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내용의 제보가 들어왔다. 사람들과 차들의 통행이 잦은 길옆으로 대형견 대여섯 마리가 묶여 있어 보행자들이 두려워하며 개들이 짖는 소리와 일대에 풍기는 냄새 때문에 주변 환경에 피해가 갈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가끔 나타나 밥을 주는 개들의 주인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저런 곳에 개들을 기르는지 알 수 없다"며 신문 보도를 통한 상황개선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 도로가엔 혈통 좋은 대형견이…
홍성읍 역제방죽에서 100여 미터 인근의 장항선 철로 고가 기둥에 메어 있다는 대형견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워낙 덩치가 큰 데다 인근에 주정차 하는 차량만 보아도 큰 소리로 짖어대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도 품종이 좋아 보이는, 한마디로 값나가는 개들이다. 흰 개 두 마리, 검은 개 한 마리가 고가 기둥에 매여 있고, 제보자의 말대로 밥을 정기적으로 주는 주인이 있는 양 개밥그릇으로 추정되는 그릇들이 듬성듬성 놓여있다.
개울 건너편으로도 예닐곱 마리의 개들이 맹렬히 짖어댄다. 도로가에서 바라봤을 때 언뜻언뜻 보이는 개들은 고가다리에 묶여 있는 개들보다는 덩치가 작고 마릿수도 많다.
장항선 고가 밑을 통과하는 2차선 도로가의 인적은 극히 드물다. 정체모를 주인이 기르는 심상치 않은 개들이 몇몇 운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다.

▲ (좌)상자의 좁은 구멍으로 개 두마리가 밖을 주시하고 있다(우)새끼로 추청되는 사체를 철창에 갖힌 또 다른 개가 바라보고 있다


■ 개울 너머 인적 드믄 곳엔…
자세히 살피기 위해 개울 건너편으로 접근하자 개들의 맹렬했던 기세가 잦아들며 사뭇 움츠려들기까지 한다. 역시 밥그릇이 듬성듬성 놓여 있고 몇 마리는 집안에서 눈만 내어 놓은 채 낯선 이방인을 주시한다. 개들은 개울 옆으로 일반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옆으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목줄은 1m 정도로 짧게 매어져 있고, 밥그릇도 놓여있는 것으로 볼 때 분명 주인이 있는 개들이다.
이상한 개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승용차가 지나가려 경적을 울려도 길가에서 좀처럼 빗겨나지 않는다. 아예 경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움직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에 유심히 살펴보니 눈 주변의 상처가 곪은 듯 얼굴이 엉망이다. 사람이 다가가도 일체의 움직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흰 개는 당장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90도로 꺾인 길 저편으로 희미한 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두 마리의 것이 아니었다. 소리를 따라 들어서는 좁은 포장 길 옆 철조망에는 양말을 비롯한 몇 개의 낡은 옷가지가 옷걸이에 걸려 바싹 말라있었다. 주변에 인가는 없다. 철길 옆 시멘트 포장된 좁은 농로에 널려 있는 빨래는 누구의 것일까. 그리고 개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 방치된 사체들…죽음이 코앞에
윤기가 돌았을 갈색 털은 불과 며칠 전에 생명력을 잃었다. 같은 어미에서 나왔을 대 여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기괴한 자세로 뒤엉켜 있었다. 앙상히 드러나는 갈비뼈는 죽기 직전까지 밥을 주는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음을 짐작케 했다. 어린 개들의 사체무덤은 초겨울의 날선 바람을 맞으며 뻣뻣이 굳어 철길 언덕 옆으로 방치돼 있었다. 그런 사체무덤이 두 개. 이곳에서 지금까지 몇 마리의 개들이 이 같은 죽음을 맞았을까.
어렴풋한 개 울음을 따라 꺾어 들어간 철길 옆은 개들의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개들이 갇혀 있는 낡은 20여개의 우리가 길 양옆으로 즐비했다. 벼가 베인 논 일부를 점유한 철창들 일부는 비어있거나 일부는 한두마리의 개들이 들어 있는 식. 개집이라기보다 상자에 가까우리만치 빈틈을 찾기 어려운 개집의 좁은 틈으로 두 마리의 개가 각각 눈을 내밀었다. 고요히 외부인을 주시하는 눈빛은 두려움 그 자체. 철창과도 같은 개집 사이로는 갈색 강아지 사체가 여러 구 방치돼 있다. 철장에 갇힌 갈색 도사견이 불과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누워 있는 자신과 같은 색의 강아지 사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철창 안에도 개 사체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뼈가 앙상히 드러날 정도로 말라 있는 모습. 생전에 극심했던 굶주림의 흔적이 여실했다.
아직 살아있는 개들과 죽은 개들이 뒤엉켜 있는 아비규환의 현장. 장항선 철로 인근, 인적이 드믄 벌판에서 수 십 마리의 개들이 잔혹의 탈을 쓴 주인에게 방치된 채 두려움에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관련기사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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