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의 기운이 생동하는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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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의 기운이 생동하는 드로잉
  • 황찬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4.0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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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시절 이응노는 문인화 전통에 표현의 답습을 벗어나 그림의 소재를 현실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찾고자 했고, 필법도 세밀함을 기본으로 대상을 클로즈업해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식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의 변화를 추구했다. 

그리고 조선과 일본을 10여 년간 왕래하는 동안 고향 홍성을 비롯해 금강산 일대, 한강 주변, 경복궁 주변 등을 돌아다니며 산수풍경화를 비롯한 시장에 모여든 사람풍경, 일꾼들, 여성 누드, 소나 염소, 닭 등 동물들, 주변의 풀과 꽃, 나무 등을 사생하면서 대상을 관찰하고 사실적 표현능력을 키웠다. 

이러한 현실적 대상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사생(드로잉) 능력은 이응노의 회화가 전통적인 관념산수화에서 탈피해 사실적 표현과 서양화풍의 원근법이 가미된 풍경, 작품의 주제의식이 강조된 사생과 사의가 조화를 이루는 반추상 풍경화 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 분야에서는 대상 사물에 대한 표현능력의 수준이 높을수록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움직이는 대상 사물의 사실성과 볼륨감, 율동감과 생동감 등 표현력이 높을수록 보는 이들에게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을 전달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회화에서 중시하고 있는 사혁(謝赫)의 육법론(六法論) 중에서도 응물상형(사물의 모양새를 보이는 대로 사실적 묘사), 수류부채(사물의 고유한 색채를 있는 그대로 표현) 등 대상 사물의 형태와 색채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통해 궁극의 기운 생동한 예술작품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동서양 미술사 흐름에서 대가라 칭할 수 있는 수다한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연구해 보면 기본적으로 높은 드로잉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응노 화백의 드로잉 수준은, 동료였던 운보 김기창 화백의 평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남화의 문인화적 감흥을 잃지 않고 시정(市井)에서 오고 가는 길가에 눈에 뜨이는 주위의 모두가 서정시로 보여 그것이 즉시 그림이 되고 마는 것인데…”라고 당시 이응노의 예술에 있어 사실적 묘사력에 대해 정확하게 평론한 바 있다.
 

홍성동문, 종이에 연필, 28.5x37.5cm, 1937년.
홍성동문, 종이에 연필, 28.5x37.5cm, 1937년.

이응노의 작품 <홍성동문>은 현재 홍성의 ‘조양문’을 서양의 기하학적 원근법을 근간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소화 십이년 십이월 팔일 홍성동문’이란 표기를 보아 1937년 12월에 고향 홍성을 방문했을 때 남긴 스케치임을 알 수 있다. 

조양문을 중심으로 주변 거리 풍경을 담았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서 팔작지붕을 활달하게 구성했고, 누각의 기와와 서가래, 들보 등과 주변의 나무전신주와 전선 등을 상세하게 표현했다. 
 

어머니, 종이에 채색, 26.5x36.5cm, 1943년.
어머니, 종이에 채색, 26.5x36.5cm, 1943년.

다음 작품 <어머니>는 이응노가 늘 가슴에 품고 그리워했던 고향집을 배경으로 한 어머니의 초상화 작품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의 뛰어난 사실적 표현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인자한 표정과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앉아 계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이응노가 늘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포근하고 너른 품이 따뜻하게 묻어난다. 
 

수덕자택, 종이에 연필, 15.1x24cm, 1950년대.
수덕자택, 종이에 연필, 15.1x24cm, 1950년대.

다음으로 작품 <수덕 자택(修德 自宅)>에서는 전면에 왼편과 오른편에서 자라난 덩굴이 중앙에서 서로 얽혀들면서 둥근 공간을 구성했고, 덩굴 사이로 수덕여관의 정면이 등장하도록 구성했다. 빠른 속도감이 나타나는 필치로 세세한 것들은 생략하면서 나타내고자 하는 부분에 집중하면서 선택과 집중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황찬연 <DTC아트센터 예술감독, 칼럼·독자 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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