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법에 따르면 문화재란 적어도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유·무형의 것들이다. 그동안 보존·보호를 원칙으로 관리돼 왔다. 최근 문화재활용이 세계적 추세가 됐고, 지난해 4월 ‘국가문화유산 기본법’이 제정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국가문화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꾸고 5월 17일부터 문화유산에 대한 다양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전문가적문화재’와 ‘대중적문화재’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이번 국가문화유산청에 큰 기대를 건다. 예를 들면 조선 초기에 건축된 보물 제399호 고산사 대웅전은 고려와 조선의 양식이 혼재돼 있어 전문가들에게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는 오래된 작은 한옥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높이 8m, 폭 4m의 자연석 바위에 조성된 상하리미륵불과 어우러지는 주변 환경 등 그 특이함은 일반인들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지방 양식으로 분류함으로써 크게 평가받지 못했다. 그동안 무관심으로 2000년경부터 10여 년 걸쳐 절토·굴착·매립 등으로 본래의 예술·종교적 가치들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홍성군은 지난 2021년 불법건축물을 철거했고, 2023년 정비계획을 수립해 본래 모습 회복에 애쓰고 있다.
국가문화유산청이 중점을 두고 있는 문화재활용에서 본다면 용봉산에 산재돼 있는 5구의 불상과 주변의 또 다른 5구의 불상, 용봉산성, 최영장군전설과 9부 능선에 위치한 굴속의 우물 등의 신비함은 전국적 경쟁력을 갖춘 홍성 유일의 자원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물’이라는 속담처럼 문화관광자원으로 엮어내는 정책이 시급하다.
앞서 전제했듯이 또 다른 문제는 ‘상하리미륵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감히 말하지만 ‘가방 모찌’라고 비하되는 학맥과 식민사관을 탈피하지 못해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보고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용봉사 마애불’은 최초보고서에 조성연대 새겨진 가장 오래된 불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문제는 명문해석에 있어 인부(仁符)라는 글자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이후 후학들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한문학 권위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영성 교수의 자문을 받았다. 신라 왕족들은 성(姓)을 기록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 보령 성주사를 일으킨 인문(仁問), 명문의 정원 15년은 소성왕 원년이고 소성왕의 아버지가 인겸(仁謙)인 점을 미루어 볼 때 인부(仁符) 역시 신라 왕족일 확률이 높다. 이뿐만 아니라 해석을 할 때는 한 글자도 빼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학계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상하리미륵불에 대해 지방 양식의 민불(民佛), 미완의 불상 등으로 표현한다. 참으로 잘못된 견해이다. 이것은 우리 문화재를 서구의 관점과 중앙의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영향으로 서구는 예술의 형식미가 인간을 지배한다.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은 완벽한 형식미를 갖추고 인간을 압도하는 석굴암 불상을 최고로 평가한다. 그러나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는 불교 교리에서 보면 석굴암 불상의 완벽함은 통일제국의 지배 논리가 투영돼 있다. 이어 은진미륵으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거대한 고려 불상들 역시 민중을 압도하는 왕권의 상징으로 표현됐다. 이것은 경외심마저 버려야 하는 불교의 근본에서 멀어져 있다. 반면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에서 보듯이 상하리미륵불은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중생과 소통하려는 듯 자애롭고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즉, 불상이 나타내고자 하는 불교 교리와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어 ‘고려인의 미소’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미완의 불상이라는 주장 역시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음으로 생긴 오해라고 본다. 미륵불 뒤 둥근 바위가 자연스럽게 광배를 이룬다. 마치 누가 일부러 가져놓았다 할 만큼 절묘하다. 그리고 옆으로는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다. 이 같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 얼굴 부분을 제외한 몸통은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전체를 표현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륵불의 뒷모습을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기운이 뿜어진다. 만약 사실적으로 잘 다듬었다면 이러한 기운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뒤편 바위는 음(陰)의 형태를 가짐으로써, 미륵불은 자연스럽게 양(陽)을 상징하게 된다. 그래서 수컷 봉(鳳), 암컷 황(凰)으로서 용봉산의 봉황을 나타내고자 했었다고 본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미륵불 앞 너럭바위에서 산 정상을 쳐다보면 미륵불과 흡사한 바위가 보인다. 이것 또한 무시 못 할 작가의 안목이다. 이처럼 문화재가 나타내고자 하는 본래의 의도와 조성자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간과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문화유산청의 시대를 맞아 홍성의 문화재들은 홍성의 입장에서 재조명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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