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의 시작
여성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는 여성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간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취업이 잘 된다는 엄마의 권유를 이기지 못해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한다. 홍성의료원 노조지부장 진락희(홍성읍 고암리· 40) 씨는 광천이 고향이다. 홍성여고, 혜전대를 졸업하고 홍성의료원에 취직해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만 근무했으니 말 그대로 홍성토박이인 셈이다.
"솔직히 대학을 졸업하고 타지에 있는 대학병원에 취직하려 했지만 고2때 혼자 되신 엄마를 두고는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어요. 1994년 12월 의료원 근무를 시작해 이듬해 3월 정식 발령을 받았으니 햇수로 20년이 됐네요" 노조활동에 눈을 뜬 건 우연이었다. 2000년 당시 의료원은 행정자치부 소속이었고 IMF를 겪으면서 병원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단순히 인건비를 낮추겠다는 목적으로 시행되는 병동 통폐합 반대운동이 시작되면서 진 지부장은 노조원들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문예활동을 하게 됐단다.
"어려서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노동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함께 노래하고 춤추니까 즐겁기만 했어요. 당시 노조지부장이 저를 보더니 뭔가 끼가 있다며 민주노총 교육을 받게 했고 그때부터 노동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인 노조활동을 하면서 공공의료의 개념과 역할을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노조활동을 하면서부터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다소 우월감도 있었고 권위주의적인 발상이었죠. 그러나 병원 외부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어느 사람이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병원식당에서 일하는 여사님이나, 청소하시는 분, 전문 간병인들…. 그분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지요. 그러면서 간호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방식도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답니다"
젊은 나이에 여자가 노조지부장으로 활동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상처와 배신도 수없이 겪었다. 다수를 위해 일한답시고 소수의 의견을 저버릴 수밖에 없어 미안한 일도 있었다. 모두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낼 수 없어 서운함을 가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홀로 견뎌야 했다.
■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된 노조활동
지난해 말부터 직제개편, 비정규직 정규직화, 인력 충원 등을 두고 의료원 측과 진행하고 있는 교섭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조합과 의료원 사이의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노조활동은 제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노조활동이란 것이 거창한 게 아니에요. 그저 노동조건 향상과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 직원이 만족하고 환자가 만족하는 좋은 일터, 좋은 병원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병원은 직원들이 평생을 근무해야 하는 일터에요. 병원의 모든 것이 병원 관계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또한 영리만 추구하려는 기업적 마인드에서 벗어나 취약계층 의료서비스 확대 등 지역 내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노력도 계속할 계획입니다"
그녀는 앞으로 지역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여생을 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전문적 기술과 지식을 이웃들과 나누면서 소통하는 삶을 살고 싶단다. 요즘처럼 사회적 경제 개념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시점에서 본다면 의료생협도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고 제시한다.
이제 마흔이 된 그녀. 아직 미혼인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연애도 해봤고 상처도 받아봤어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러한 활동들을 이해해 주고 동반자처럼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난 것 같아요"
올해 12월 말이면 지부장으로서의 임기가 끝이 난다. 남은 1년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계획이자 소망이다. "맨 처음 지부장이 됐을 때 민주적이고 투명한 조합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어요. 평가는 조합원들이 하겠지만 지금 진행 중인 사측과의 직제개편을 잘 마무리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의사, 약사, 간호사 모두 같은 의료인임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에 대한 처우가 너무 뒤떨어져요. 일한 만큼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일이 너무 힘들어 어렵게 면허를 따고서도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장롱면허를 갖고 사는 간호사들을 보면 참 속상해요. 정부에서 간호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 관심을 좀 가져 줬으면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한 존재로 우선 되는 세상,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아픔을 치료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그녀는 밝은 얼굴로 환자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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