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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전통시장 노점 빵집 이창순 씨 가족
홍성전통시장 노점 빵집 이창순 씨 가족

홍성전통시장 한 귀퉁이에는 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허름한 빵집이 하나 있다. 비닐로 대충 바람을 막고 작은 진열대에는 단팥빵, 소보르빵, 크림빵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빵들이 놓여 있다. 이름난 대기업의 빵처럼 포장이나 모양이 세련되지는 않지만 저렴한 가격과 소박한 빵맛으로 시골 어르신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홍주제과'라는 이름의 빵집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어머니와 아들 내외다. 어머니 이창순(70) 씨는 원래 3년 전 이곳에서 호떡을 구워 팔았다. 그러다가 1년 전부터는 아들 박세철(40), 며느리 장지연(33) 씨와 함께 업종을 바꿔 빵을 팔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 씨는 "제 고향은 청주에요. 남편은 공주이고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홍성 땅에 발을 붙이고 산지가 벌써 4년이 됐네요. 그래도 같은 충청도 땅이라서 그런지 인심도 좋고 살기도 편하구, 우리 고향이나 다름없이 정이 들었어요"라며 말문을 연다.
아들 박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빵을 구웠으니, 이제는 거의 베테랑 수준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결혼해 지난해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함께 빵을 팔고 있다. 박 씨는 "사실 공부에 별로 흥미는 없었어요. 빵을 만들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장에 나오신 어르신들이 제가 만든 빵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힘이 솟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 이 씨는 30년 간 노점상을 해 왔다. 남편의 직장이 부도가 나고 병이 들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포장마차에서 겨울엔 호떡이나 튀김 등 간식거리를 팔았고, 여름엔 옥수수를 팔았다. 단속반에 쫓겨 도망도 다니고, 포장마차를 통째로 빼앗긴 적도 부지기수, 그래도 장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서울과 안산 등지에서 노점상을 했지요. 참 힘들게 살았네요. 단속이 뜨면 포장마차를 통째로 끌고 냅다 도망치기 일쑤였죠. 어떤 날은 아침에 나와 보면 포장마차가 없는 거예요. 벌금이 비싸서 포장마차를 찾으러 갈 수도 없었어요. 그러면 남편이 조그맣게 앵글로 포장마차를 다시 만들어 주었고 또 장사를 나가곤 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도 비록 노점이지만 살만 해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아침 6시면 혼자 나와 직접 반죽하면서 손수 빵을 굽는 아들 박 씨는 보잘 것 없는 노점이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빵을 굽는다고 한다.
"가장 속상한 것은 노점상에서 파는 빵이라고 사람들이 무시할 때입니다. 여기 단팥빵이나 소보르빵은 단돈 500원이에요. 대형 제과점과 견주어 결코 뒤떨어지는 맛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골 어르신들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하나 꺼내 주시면서 손주들 갖다 준다고 빵을 사 가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요. 지난해보다 재료비가 2배는 뛰어 값을 올려야 하지만 우리 집 단골손님들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거든요. 이익이 덜 남더라도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구요" 대기업의 프렌차이즈 제과점이 골목까지 들어서면서 작은 제과점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박 씨는 열심히 일해서 조그만 빵집 하나를 갖는 게 소원이다. 날이 춥거나 더우면 빵맛이 덜하기 때문이라는 게 박 씨의 이유이다.
"수도 없이 내가 갖게 될 제과점을 그려봅니다. 이름은 뭘로 지을지, 어떤 빵을 만들지,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행복한 빵집' 어떠세요? 행복한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먹으면 진짜 살맛 날 것 같지 않으세요?"라며 박 씨는 자신의 꿈을 부끄러운 듯 꺼내 놓았다. 30년 간 노점상을 했어도 아직 노점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들 가족만의 문제는 아닐 터. 불현듯 소박한 작은 꿈을 가지고 사는 서민들의 '희망'이 자꾸 멀어지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답답하다.
꿈을 잃지 않고 작은 천막 안에서 가족 간의 사랑으로 빵을 굽는 이창순 씨 가족의 '행복한 빵집 만들기' 프로젝트가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길 빌어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기어이 커다란 크림빵을 안겨 주는 이 씨의 손길에서 맛있는 빵과 함께 따뜻한 삶의 온기를 동시에 전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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