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지닌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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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지닌 가치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1.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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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범상스님</strong><br>석불사 주지<br>칼럼·독자위원​​​​​​​<br>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
칼럼·독자위원

현재까지 인간의 능력으로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을 찾지 못했다. 과연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있을까. 이 같은 궁금증은 삼천년 전에도 있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님께 지구의 크기를 물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답했다. 우주는 삼천대천세계를 이루며, 지구는 겨울날 닫아 놓은 문틈으로 비치는 햇빛 가운데 떠다니는 먼지 정도의 크기라고 했다. 이 같은 비유는 현대과학에 의해 날로 증명되고 있다.

삼천대천의 우주에서 지구는 사바세계에 속해 있다. 사바세계는 또다시 동서남북으로 동승신주(東勝身洲), 서우화주(西牛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북구로주(北俱盧洲)로 나눠진다. 그래서 우주에서 우리의 주소는 사바세계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이 된다. 이때 사바세계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나, 세상의 견해가 혼탁하다. 하나, 참고 견뎌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하나, 구하고자 하는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위의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삶의 경험들이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명절역시 사바세계를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 설과 추석으로 대표되는 명절은 농경사회에서 매달 하나씩 있었다. 일월 설, 이월 영등, 삼월 삼짇,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팔월 추석, 구월 중양, 시월 상달, 십일월 동지, 십이월 그믐 등이다.

명절은 조상에 대한 차례와 대동놀이가 바탕을 이룬다. 그래서 명절의 목적은 사람다움과 공동체의 화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는 계절에 따라 집약적 노동력이 요구되며, 먹거리인 농산물은 저장의 한계가 있다. 특히 일 년 중 농사 가능한 계절이 매우 짧고, 때를 놓치지 않아야 겨우 1모작이 가능하며, 목축마저 불가능한 우리 땅은 삶에 있어 매우 불리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효(孝)와 공동체의 화합이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동물적 본능에 속한다. 그래서 부모는 배우지 않아도 자식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한다. 반면 효는 반드시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야 가능한 일이다. 먹거리가 부족한 척박한 땅에서 노동력을 잃은 노인(부모)은 설자리가 없다. 이때 그동안 교육시켰던 효의 힘이 발휘돼 노인의 생존을 보장한다. 구비문학에서 자신의 살점을 베어 부모를 봉양했다던가, 흉년에 자식을 삶아 부모님께 드렸는데 알고 보니 효심에 감동한 산신령이 보낸 동자삼(童子蔘)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널리 퍼진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효가 조상제례를 통해 강조돼 왔다면, 공동체의 화합은 대동놀이로 다져져 왔다. 필자의 경험에서 보면 들판이 발달되고 농업환경이 용이한 충청도 지역은 공동체의 결속이 느슨하고 느리다. 반면 평상시에도 온 동네 사람들의 울력이 필요한 경상도와 전라도는 결속력이 강하고 빠르다. 여기에 강원도처럼 너무나 척박하여 산속 깊이 띄엄띄엄 사는 곳은 또 다른 형태를 보인다. 그래서 평소에는 씨족 단위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던 동네사람들이 명절에는 한곳에 모여 공동체의 화합을 다진다. 왜냐하면 농업용수 확보, 자연재해 극복 등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일들을 해결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그동안 명절이 목적으로 삼았던 효와 울력이라는 공동체화합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효가 감당해 왔던 부모봉양(자신의 노후)은 국가의 복지정책으로 대처했고, 인간의 노동력은 기계가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씨족의 개념마저 사라지면서 촌수와 나이라는 위계와 연배의 사회질서가 소멸됐고 그 자리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공동체의 규칙이 대치됐다.

사회적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명절은 생명력을 잃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다움의 추구라는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자동차에게 ‘자동차답다’라 하지 않는다. 이미 완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끊임없는 노력과 수행으로 인간다움을 갖춰야 한다. 인간다움을 갖춘 사람을 부처, 군자, 성현이라 해 모범으로 삼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사회는 변해왔다. 현대사회는 급변한다. 누구나 맞이하는 늙음은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서 급변하는 속도만큼이나 노인(자신의 늙음) 문제는 다양해지고 많아진다. 그래서 농경사회와 같은 생존의 문제로서 효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질에서 효는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꽤 오래전부터 부모의 경제력이 효를 대처해 왔고,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는 순간 불효자로 돌변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상속한 재산을 환원하겠다며 부모 자식 간의 소송이 더 이상 생경한 뉴스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따라서 명절과 조상제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사회적 합의와 국가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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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2025-01-27 08:11:24
공부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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