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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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 >
  • 한지윤
  • 승인 2013.04.2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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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그렇다고 과외를 안해본 것도 아니고. 수석이라는 위치에 걸맞는 가슴 찡한 얘기가 없잖아. 큰일이야, 큰일."
이마를 짚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는 개동을 보며 두 사람은 어이가 없어 마주보며 웃으면서 일어섰다.
"그렇다고 공부시간에 딴청해가며 만화책, 비디오 다 빌려다보며 공부했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도 후배들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고."
현우와 진영이 살금살금 빠져나가 혼자 남은 것도 모르고 개동은 계속 중얼 거렸다.
"에잇, 모르겠다. 사실대로 말하지 뭐. 원래는 공부에 특기는커녕 취미도 없었는데, 김진영 도사의 사사를 받고 수석까지 하게 됐노라고. 야, 김진영! 너 매스컴 타게 생겼다. 그러면 한 턱 내는 거......"
덩그러니 혼자 남은 걸 깨달은 개동은 눈을 껌뻑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허겁지겁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섰다.
"킥킥, 이제 정신 좀 돌아왔냐?"
"고마워요. 자기밖에 없는 것 같아"
사내는 괜시리 어깨를 털어주며 웃는 그녀의 볼을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잠깐 문을 연 사이에 밀려들어온 찬바람에 정마담은 옷깃을 여미며 안방으로 들어가 담뱃갑을 갖고 거실로 나왔다. 라이터 불을 켜려다가 건너방문을 쳐다보고는 살금살금 걸어가 귀를 대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소파에 앉은 그녀는 불을 붙여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켰다. 뱃속 깊이까지 들어간 담뱃진이 온 몸을 금세 풀어놓았다.
뿌연 담배연기 속에 미라 담임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교 당국에서는 중징계를 해야 된다고 단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만 각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미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피부색이 하얗고 선이 가늘어 예쁘장한 젊은 선생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여학생들은 남학생들과 달라서 한 번 잘못된 길을 들어서면 돌이키기 어렵지 않습니까?"
마치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억지로 참았었다.
"저도 각별히 신경 써서 지도할 테니, 가정에서도 잘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클럽인가 하는 사내 녀석들과 어울려 디스코장에 출입하다 걸렸을 때 담임선생은 간곡하게 부탁을 했었다.
그녀는 담임선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미라가 나쁜 길로 들어섰다면 그것은 순전히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라가 짙은 화장을 하고 허벅지를 다 드러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주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미 된 도리로 꾸짖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기도 했지만 결국 번번이 내버려두곤 했었다.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크린싱 크림을 듬뿍 퍼서 얼굴에 퍼 바르고 화장지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두껍게 덮었던 화장이 지워진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허리를 굽혀 고개를 바싹 들이밀고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두꺼운 화장으로 간신히 가렸던 눈가의 깊은 주름이 맨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보다 많아지고 검어진 기미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사십대임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보다 젊고 예뻐 보여야 하는 뭇 남자들의 꽃으로서의 역할보다 고등학생인 딸을 둔 어미로서 역할을 더 강조하고 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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