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녹색당
칼럼·독자위원
7년 전에 귀촌해 홍동면에 살고 있다. 도시의 친구들은 아직도 횡성인지, 홍천인지 묻고, 헷갈려한다. 예산, 아산은 알아도 홍성은 잘 모른다. 지역 특색이 약하고 자연환경이 빼어난 것도 아니니, 그럴만하다. 부모님께서도 이 허허벌판 시골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왜 살겠다고 하는 거냐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으셨다. 내 걱정에 함께 귀촌하신 부모님은 지금 마을에서 너무나 즐겁게 지내고 계신다. 아버지는 ‘마을 교사’로 초등학교 목공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거나 마을에 필요한 작업을 간간이 하고, 의료사협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걷기 모임에 참여하는 등 마을 안에서 교류하며 지내신다. 어머니도 마을 장터에서 먹거리를 판매하고 치매예방 색칠공부 동아리, 발효음식 동아리 등을 만들어 바쁘게 지내신다. 이제는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냐고 하시며 적극적으로 마을 일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며 생활하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홍동면에는 일년내내 ‘선진지’를 견학하러 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특별한 곳이다. 한국에서 유기농업이 처음으로 시작된 곳으로 유기농업 선진지이며, 생활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에 이어 의료조합, 마을교육 협동조합, 협동조합 술집, 쌀빵 협동조합, 막걸리 협동조합, 등 각종 협동조합이 운영되는 마을이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와 대안대학인 풀무학교 전공부가 있어 친환경 농업에 관심 있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드는 마을이기도 하다.

20~30대들도 많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다양한 동아리, 공부 모임들이 있고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장터에서는 서로 농사짓고 요리하고 그림 그리고 만든 것들을 판매한다. 장터에서는 ‘잎’이라는 예쁜 지역화폐 지폐를 사용한다. 마을 곳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체 지역화폐뿐 아니라,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도 가능한 우리가 만들고 운영하는 ‘도토리 은행’도 있다. 마을교육 협동조합에서는 ‘마을 교사’라는 제도를 통해 홍동초, 홍동중, 풀무고등학교의 정규수업과 방과후수업을 지원하며 공교육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다. 아이들은 매년 여름 마을 어른들과 지리산을 완주하고, 환경, 인권, 평화, 민주주의, 젠더, 농사 수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마을교사’로 만난다. 지난달 30일에는 ‘제4회 홍동뮤직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주민들로 이뤄진 11개의 밴드가 출연하는 지역 자생 음악 축제다.
홍동면 자랑을 했지만 여기 산다고 해서 모두 걱정 없고 행복하기만 한 건 당연히 아니다. 농사든 반농반X든, 마을교사나 협동조합 운영을 하든, 먹고살기 힘든 건 보통사람들에게 도시나 농촌이나 매한가지인 시대 아닌가. 하지만 홍동을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든 홍동에 살고 싶어 한다. 홍동 사람들 또한 다정하고 재미난 이 마을과 그 안에서 형성된 관계를 아끼며 애정을 갖고 살아간다. 환경과 사람을 위한 농업, 입시나 경쟁보다 중요한 가치를 말하는 교육, 무엇보다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협동조합들, 이 모든 것을 이루고 지켜온, 지금도 삭막한 자본주의적 방식에 대항하기 위한 자그마한 노력을 일상에서 끊임없이 일궈 나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삶이 막막하더라도 어쩐지, 숨통이 트이고, 힘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홍성군의 11개 행정구역 중 한 곳에 불과할 뿐인, 이 작은 면에서 대체 어떤 연유로 이렇게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걸까? 살면서 늘 궁금했던 부분을, <풀무학교는 어떻게 지역을 바꾸나>를 읽으며 드디어 파악할 수 있었다. 책 속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홍동면의 무지갯빛 역사가 펼쳐져 있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이어져 온 사회개혁사상이 몇백 년 후 일본의 ‘무교회’ 신앙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뿌리가 되어 풀무학교의 원동력이 됐단 것, 한국과 일본 무교회주의자들의 교류안에서 싹튼 것이 바로 환경농업 즉 유기농업이며 덕분에 “아시아 유기농업은 1971년 일본, 1976년 한국 홍동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풀무학교 창립자 이찬갑은 민족 운동의 본산인 오산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의 종손자로, 무교회 성서모임에서 만난 홍성 출신 주옥로의 설득에 1958년 함께 풀무학교를 설립했다. 공동창립자 주옥로의 고향이 바로 풀무고가 있는 홍동면 팔괘리였기에 유기농업과 개혁사상의 유구한 역사가 바로 이 홍동면에서 펼쳐질 수 있던 것이었다.
홍동면의 역사가 담긴 책을 국사책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겠다. 책은 풀무학교의 창립, 다양한 협동조합 이야기, 그 외 지역 언론과 도서관 운동 등 각 장을 할애해 홍동을 설명한다. 나의 부모님처럼 나이가 드신 분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까지도 이 공동체로부터 삶을 꾸려갈 힘을 얻고, 자꾸만 찾아오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며 생각해 본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의 시대, 자본에 의한 전쟁의 시대에 우리 마을이 혹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이 작은 씨앗에 혹시 답이 숨어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홍동면의 이야기에 한번 관심 가져보시길 권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