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살림연구소장
칼럼·독자위원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해 재해근로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사회보험으로, 1964년 7월 1일 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 제도이다. 즉, 산재보험은 국가가 사업주로부터 소정의 보험료를 징수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한 사용자의 보상책임을 보장하고, 사업주에게는 산업재해 발생 시 일시에 소요되는 보상비용을 보험의 원리를 이용해 분담하게 하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근로자가 법률에 따라 산재보험급여를 받을 경우, 사업주로 하여금 동일한 사유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재해보상 책임을 면제함으로써 근로자의 재해보상을 보장하고, 사업주의 재해에 따른 경영상 부담을 경감하는 제도다.
1964년 8만 명으로 시작된 산재보험 가입자는 2023년 2211만 명에 달한다. 사실상 전국민 보험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재해 발생 위험이 높은 업종의 자영업자들을 산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1명 이상을 고용한 모든 사업장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 하지만 사업주는 원칙적으로 가입대상이 아니다. 300인 이하 사업장의 사업주는 본인이 원할 경우에 한해 가입할 수 있다.
문제는 5인 이하 사업장의 산재 발생률이 1.11%로, 전체 업종 평균 발생률(0.66%)의 두 배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위험한 업종부터 시작해 추후 ‘전국민 산재보험’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영업자들은 의무가입이 부담된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에서도 보험료의 절반 정도는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는 보험의 역할을 해야 한다. 노후, 건강, 재해 등은 국가가 안전망으로 해결해 줘야 국가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경제 발전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첫째, 재정건전성에 대한 과도한 우려다. 산재보험 재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산재보험의 재정수지는 2024년 결산 기준으로 수입액 10조 9039억 원, 지출 9조 5668억 원으로 1조 3371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적립금도 25조 3653억 원에 달한다. 물론 지출액 증가율(7.8%)이 수입액 증가율(7.1%)보다 높아 주의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고갈을 우려하며 필요한 정책을 미뤄야 할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한 반대는 순수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아직 흑자인 산재보험을 ‘적자 재정’ 프레임으로 몰아가며 대상자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건전재정을 빌미로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둘째, 산재보상 판정의 지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누가 봐도 명확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진찰요구(특별진찰)를 과도하게 활용해 처리 기간이 장기화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추정의 원칙’ 적용 비율은 4%에 불과하며, 진찰요구 건수는 2020년에서 2023년까지 167.3% 증가했다. 이는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처리 기간 규정이 실제와 차이가 크고, 조사 단계별 표준 처리 기간조차 정해져 있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법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피해 근로자의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재정건전성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므로, 이는 책임 회피와 방관의 관료주의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셋째, 산재예방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2025년 예산 기준으로, 고용노동부는 산재예방사업을 목적으로 매 회계연도마다 산재보험기금 지출예산 ‘총액의 3% 범위’에서 출연금 예산을 계상하고, 지출예산 총액의 8% 이상을 산재예방사업에 편성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2025년 편성된 산재예방사업비는 1조 4700억 원으로 법정 비율을 준수했으며, 일반회계 전입금 중 산재예방사업 지원액은 150억 원으로 나타났다.
예방 노력이 증가하면 보상 지출은 감소해야 한다. 현 정부는 산재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어 조세감면과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산재보험의 지출 확대가 성과 측정과 연계돼 산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재정지출은 수단이다. 이왕이면 현장의 근로환경이 개선돼 사고가 줄고, 그 결과 보상이 감소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선순환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중요할까?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하고, 그것도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일하며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