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곡면사무소 3·1운동만세시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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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면사무소 3·1운동만세시위지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5.11.06 06:53
  • 호수 915호 (2025년 11월 06일)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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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우리지역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알기 〈7〉
【3·1독립운동/건물/멸실/사적 미지정/장곡면 도산리 489-1일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의 항일독립운동 현장인 사적지를 탐사, 항일독립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활용하기 위한 발굴·기록·교육·홍보 등을 통해 정신적 유산을 계승,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조명되도록 항일독립유산의 사적·기념물 지정 등의 촉구를 위해 ‘우리 고장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알기’를 통한 지역공동체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적지명/분류/종류/상태/사적지지정/주소】순 <편집자 주>

장곡 3·1독립운동 기념비.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489-1일대는 1919년 4월 7~8일 두 차례에 걸쳐 장곡면민이 3·1독립운동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지금의 당시의 건물은 멸실 됐으며, 장곡면사무소가 새롭게 세워져 당시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장곡면에서는 윤형중(尹衡重), 윤익중(尹益重, 世重), 윤낙중(尹樂重, 己順) 형제들의 주도로 4월 4일에 매봉산에서 횃불 만세시위가 전개됐다. 윤낙중은 2월 말경 민족대표 33인이 주도하는 3·1독립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3월 1일 탑골공원에 나가 독립선언서 선언식에 참가했다. 윤익중은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가지고 윤낙중과 함께 3월 20일 귀향했다. 윤익중은 윤형중, 윤의석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의 행동강령을 결의하고 지역 인사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했다. 이들은 4월 4일에 윤만수, 이문재, 최기석, 최채선 등 장곡면 화계리·광성리·신풍리 주민들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7일과 8일에는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됐다. 7일에는 김동하(金東河, 東化)의 주도 아래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김동화는 김동완(金東完), 김용숙(金容肅), 김용제(金用濟), 이화춘(李化春), 김차제(金次濟), 한상철(韓相喆) 등 화계리 주민들과 앞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도산리 면사무소로 이동, 시위를 전개했다. 오후 8시경 광성리와 가송리 등 주민 300여 명과 함께 면사무소 뒷산인 응봉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부르고 면사무소로 이동해 면사무소를 파괴하면서 시위를 계속했다. 한상철이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문재 등이 앞장서 면사무소를 공격하자 면민들도 돌과 막대기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굴뚝을 무너뜨리며 유리창 17장을 깨트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과 기물, 문서 등을 파손했다. 4월 8일에도 오후 11시 30분경 주민과 학생 등 60여 명이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1994년 장곡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도산리에 3·1독립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장곡면 지정리에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김동준은 1893년생으로 당시 20살이 채 안 된 어린 나이에 일경에 끌려가 태형 90도를 받는 등 시위에 참여한 20여 명이 태형 90도에서 2년 6개월의 형옥을 겪고, 홍성경찰서에서 태형 60도에서 90도의 형벌을 당했다.

장곡면의 3·1독립운동 만세시위는 3회에 걸쳐 전개됐다. 일제의 행정기관인 면사무소를 파괴했던 시위로 30여 명이 일제의 태형과 옥고를 겪은 역사적 의의가 있다. 기념 표석 등을 설치해 독립운동사적지로 알릴 필요가 있다.

‘김동하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20년 2월 5일)에 장곡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사실이 기록돼 있고, 지역 주민들의 증언으로 면사무소를 확인했으며, 현재도 면사무소가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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