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사직단 터’ 위치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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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사직단 터’ 위치 찾았다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5.11.13 06:45
  • 호수 916호 (2025년 11월 13일)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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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사직단, 월산리 529-6 홍주요양병원 아래로 밝혀져
성황단·여제단 추정지 함께 확인…발굴·복원 필요성 제기

그동안 홍성군지 등 문헌을 통해 홍성에도 ‘사직단(社稷壇)’이 존재했던 사실은 전해졌으나, 그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홍주사직단’의 유력한 위치가 ‘홍성읍 월산리 529-6’으로 밝혀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울러 남산 아래 성황단, 법파사 아래 여제단의 추정 위치도 함께 드러나면서, 발굴 조사 등 실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직단의 존재는 비교적 알려져 있었으나 성황단과 여제단의 위치가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25년 발행 《홍성군지(洪城郡誌)》에는 ‘홍주사직단은 홍주면 월산 아래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융희 2년(1908)까지 군 경비로 제사를 지내다가 이후 정부 경비로 이관되었고, 명치 43년(1910)에 제사를 폐지하고 그 터를 국유재산으로 이속했다’고 기록돼 있다.

1969년 《홍양사(洪陽史)》 ‘고적 편’에서는 ‘홍성읍 월산리에 있으나 건물은 철거되었고 현재 유적은 없다’고 간략히 표기되어 있다. 1980년 발행 《홍성군지》에서는 ‘한 평 남짓 규모였으며 홍성읍 월산리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2016년 발행본에서는 관련 기록이 통째로 빠졌다.

이처럼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홍주사직단’의 위치가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의 자료 확인을 통해 다시 드러났다. 조 국장은 본사 제보를 통해 관련 자료를 공유했고, 본지는 이를 토대로 사직단·성황단·여제단의 추정 위치를 최초 보도한다.

조 국장은 “지적도에서는 흔적을 찾기 어려웠으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국유지 매각 자료에서 단서를 발견했다”며 “사직단뿐 아니라 △성황단 △여제단 등 다른 유적지들도 매매기록에서 먼저 확인되는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성에서는 일제강점기 행정개편으로 ‘홍주’와 ‘결성’의 지명이 합쳐지면서 원래 지명을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 점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대정 11년(1922) ‘사직단 부지 매각 자료’에는 ‘홍성사직단 부지를 매각한다’는 기록이 있으나, 동시에 “자연 상태로 보존하라”는 지시가 남아 있어 문화·경관적 가치 인식 아래 보존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위치 표기 역시 ‘홍성군 홍주면 월산리 51번지’로 적혀 있으나, 현재 지번 체계에서는 ‘홍성읍 월산리 529-6’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해당 위치는 현재 홍주요양병원(월산리 529-5) 아래쪽에 해당한다.

사직(社稷)은 토지신(社神)과 곡식신(稷神)을 받드는 제단으로, 백성의 생업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녔다. 조선 왕실은 1908년 일제의 강압 속에 사직제를 폐지했고, 이후 전국의 사직단은 급속히 훼손되었다. 여제단(厲祭壇)은 전염병으로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는 제단이었으며, 성황단(城隍壇)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적 공간이었다.

문헌 속에서만 전해지던 사직단의 실제 위치가 고지도와 지적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만큼, 향후 발굴조사와 보존·복원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코 단순한 유적 확인의 차원이 아닌, 일제강점기 훼손된 지역 정신과 공동체 역사 회복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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