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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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6 >
  • 한지윤
  • 승인 2013.05.1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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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여자애와는 달리 붙임성 있게 인사를 꾸벅 하는 아이를 왕순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니?"
"호진이에요."
"그래? 귀엽기도 하지."
그는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열린 문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허리를 숙여야 간신히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컴컴한 부엌에 빨래들이 널려 있는 게 보였다.
"큰 누나 늦게 오는데."
"그래? 어디 갔는데?"
"공장 갔어요."
호진은 시무룩한 얼굴로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학교는 어떻게 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왕순의 질문에 수진이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안 가요."
작은 누나가 사라진 안쪽을 보며 호진이 힘없이 대답햇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예쁘장한 얼굴에 언제나 근심을 담고 있던 수미의 얼굴을 떠올리며 왕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진아!"
안쪽에서 수진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나 들어가도 돼요."
호진은 뒷걸음질 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들어가 봐. 참 이거 갖고 들어가라."
왕순은 올라오는 길에 산 귤을 건네 주었다.
"고맙습니다."
호진이 인사를 꾸벅하고는 집안으로 사라졌다. 왕순은 문이 닫혔는데도 움직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살겠다고 발버둥 치더니 끝내 학교를 포기하구 말았구나.'
콧등이 시큰해지며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 무엇에도 기댈 수 없는 막막함을 안고 학교를 떠났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냉담했던 세상을 보며 얼마나 절망했던가.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헛된 바람인 줄 깨달았을 때 또 얼마나 울었던가.
그는 갑자기 마음이 조급하기 시작했다. 수미에게 그런 절망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그렇게 찾던 세상, 사람이 있는 세상을 이 어린 친구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충동이 못이길 정도로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그는 눌렀던 용수철이 갑자기 튀듯이 벌떡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달음에 내어딛는 그의 발걸음에 바람이 일었다.
수진은 벽에 기댄 채 굽힌 무릎 위에 깍지를 껴 싸안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곁에선 호진이 종이학을 접는다고 색색가지 껌 종이를 펼쳐 놓고 야단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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